수천년 중국사에서 가장 특이한 왕조로는 왕망(王莽)이 세운 신(新,AD 8~23)이 손꼽힌다.전한과 후한의 단절을 가져온 겨우 15년 명맥의 이 나라에 대해 한때 서양의 역사가들이 쏟은 관심은 지대했다.50여년 전만 해도 초기 사회주의의 이상국가로 치켜세워졌을 정도다.

한실의 외척 왕망은 교묘한 권위 조작으로 민심을 얻고 황제 자리를 찬탈한 역신(逆臣)이지만,2000년 전 그가 의욕적으로 펼쳤던 개혁정책들은 놀랍다.

토지정책이 우선 돋보인다.누구든 일정 면적 이상의 땅을 갖지 못하게 하고 토지와 노비 매매를 금지시켰다.농민의 빈민화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화폐개혁과 함께 전매제도를 도입했다.빈민에게는 무이자 또는 싼 이자로 융자해주는 금융업도 시행했다.요컨대 '모든 농민이 농사를 짓고 재화(財貨)가 활발히 유통되도록 하며,그 가격을 공평하게 유지시켜 고리대금을 없애자는 원대한 이상'(레이 황,'허드슨강변에서 중국사를 이야기하다')이었다.

그러나 모든 개혁은 실패로 돌아가고,왕망은 자신이 해방시키려던 농민의 손에 잡혀 참살당한다.이미 호족에 의한 토지 사유가 보편화되고 있던 세상인데도,비현실적이고 맹목적인 이념과 시대에 역행하는 독선과 전횡으로 오히려 농민들의 고통만 키웠기 때문이다.왕망이 '위선적 개혁가'로 기록되고 있는 이유다.

어느덧 참여정부 5년이 저물고 있다.지난 5년은 분명 현실을 제대로 읽지 못한 이상과 이념과잉의 시대였다는 점에서,노무현식 개혁이 왕망의 그것과 닮은 꼴이라고 말하는 식자(識者)도 있다.그러나 역사의 평가는 아직 모른다.

며칠 뒤 새로 출범할 정부는 활기찬 시장경제,인재대국,글로벌 코리아,능동적 복지,섬기는 정부 등 5대 국정지표와 함께 21대 전략목표,192개 과제를 내걸었다.우리나라가 당연히 추구해야 할 지향점이고 바람직한 개혁방향이다.따지고 보면 참여정부 또한 마찬가지였다.참여정부가 5년 전 제시했던 국가균형발전,자유롭고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건설,참여복지,교육개혁 등의 핵심 국정과제는 그 자체로 전혀 흠잡을 데 없었다.그럼에도 일자리 구하기는 더 힘들어지고 집값은 다락같이 오르고 세금과 사교육비 부담만 치솟았다.지난 5년 그토록 깨부수려 애썼던 '양극화'의 모순구조는 갈수록 심화되고, "눈물을 닦아주겠다"고 다짐했던 서민들의 삶이 더욱 피폐해졌을 뿐이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의 개혁은 총체적인 '노무현 뒤집기'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하지만 의욕이 지나쳐 너무 요란스럽고 말만 앞서 정권이 아직 출범도 하기 전에,개혁은 시작도 안 됐는데 벌써 '피로증'얘기부터 나오고 있는 마당이다.

함정 또한 왜 없겠는가.끊임없이 시도되지만 끊임없이 실패하는 것이 개혁이고 그 함정이다.새 정부가 진정 실용을 추구한다면 손대지 않는 곳 없이 온갖 일만 벌여놓는 '소문만 무성한 잔치'를 무엇보다 경계할 일이다.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국민이 정말 원하는 것부터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게 진짜 실용이다.솔직히 집값 하나만이라도 확실히 잡을 수 있다면 국민들은 박수칠 것이다.희망과 기대가 꺾이는 순간 민심 또한 가차없이 돌아서고 마는 것이 예나 지금의 세태다.과거를 제대로 살펴야 미래가 내다 보인다.

추창근 논설위원 kunn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