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 계열로 있는게 아직까진 더 이익, 때가되면 분리할 것"
"요즘엔 부모님이 '분가(分家)하라'고 해도 오히려 자식들이 '아이 좀 돌봐달라'면서 함께 살려한다지요.한진해운도 마찬가지예요.당장은 대한항공과 함께 있는 게 시너지 측면에서 더 이익이라고 생각합니다.하지만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계열분리하게 될 겁니다."

2006년 말 타계한 남편(고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의 바통을 이어받아 한진해운의 '키'를 잡은 최은영 회장이 처음으로 언론과 공식 대화를 가졌다.지난 1년여간 '오너 경영인'으로 활동하며 쌓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보다 적극적인 대내외 활동에 나서기 위한 수순인 것으로 풀이된다.

최 회장은 14일 서울 여의도 한진해운 본사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지난 1년여간 한진해운을 이끌며 느낀 소회와 향후 경영 구상 등에 대해 설명했다."사람들이 알아볼까 두려워 지난해 머리를 짧게 자르기도 했다"는 그는 실제론 뛰어난 말솜씨와 유머를 겸비하고 있었다.최 회장은 거의 모든 질문에 거침없이 답했고 답하기 곤란한 질문에는 유머를 섞어가며 자연스럽게 피해갔다.

그는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한진해운 '섭정' 가능성에 대해 "한진해운은 아주버님(조양호 회장)이 아닌 아버님(고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이 셋째 아들(조수호 회장)에게 물려준 회사"라며 "아주버님도 '나는 배에 대해 잘 모른다.내 지분 빨리 사가라'고 말할 정도로 한진해운 경영권에 대해선 (셋째 몫이라고) 인정하고 있다"고 일축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최 회장이 직.간접적으로 지배하는 지분이 8.25%에 불과한 데다 '롯데가(家) 사람'이란 점을 들어 대한항공 등을 통해 한진해운 지분을 9.95%나 보유하고 있는 조양호 회장이 언젠가 한진해운을 직접 경영할 것으로 내다봤었다.최 회장의 모친 신정숙 여사는 신격호 롯데 회장의 넷째 여동생이다.

최 회장은 최근 또다시 불거진 '한진가(家) 형제간 분쟁'에 대해선 한발짝 물러서 있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그는 "한진해운에 도움이 된다면 누구와도 사업 파트너를 할 수 있다"며 "한진중공업이 저렴한 가격에 좋은 배를 만들어 준다면 발주할 것이며 메리츠보험이 더 좋은 상품을 선보인다면 계약을 늘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앞으로 한진해운을 직접 경영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대모(代母)' 역할에 충실할 뿐 CEO(전문경영인)는 맡지 않을 계획"이라고 답했다.그는 "1년간 공부했지만 아직 '해운을 안다'고 자신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며 "거스 히딩크 같은 명감독에게 전권을 위임할 때 한국 축구가 잘 됐듯이 한진해운도 능력있는 전문경영인이 잘 이끌어 나가도록 도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거액의 상속세에 대해선 "대한항공과 한국공항 등의 상속 지분 매각대금으로 4년에 걸쳐 분납할 계획"이라며 "한진해운 보유지분을 팔아서 상속세를 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평범한 주부에서 오너 경영자로 변신한 뒤 '여자라고 봐주는 법은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는 최 회장은 최근 들어 양귀애 대한전선 명예회장,이어룡 대신증권 회장 등 '미망인 오너 경영자'들과 가끔 만나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눈다고 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는 지난해 현 회장의 시어머니인 변중석 여사가 타계했을 때 찾아갔다고 했다.그는 일본에서 유학 중인 두 딸에게 향후 경영권을 물려줄 계획이냐는 질문에 "본인이 원할 경우에만 한진해운에 입사시킬 것"이라고 답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