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노베이션 포럼] 다케나카 헤이조는 고이즈미 총리 시절 정부개혁 이끈 '사령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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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나카 헤이조 게이오대 교수는 일본의 고이즈미 내각 시절 정부 개혁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고이즈미 총리의 '분신'으로 불리며 정부 개혁의 아이디어 본산이자 사령탑 역할을 했다.2001년 4월 고이즈미 초대 내각 출범 때 발탁돼 경제재정상(장관)을 맡았다.
고이즈미 전 총리가 입각하는 그에게 정부 개혁을 당부하며 "처참한 싸움이 될 것이다.함께 전쟁터로 나가자"고 했다는 말은 지금도 유명하다.
이듬해인 2002년에는 금융상을 겸직하면서 일본 경제의 현안이던 부실 채권 처리를 주도했으며,2004년 우정 민영화 담당상으로 옮겨 일본 정부 개혁의 상징이던 우정성 민영화 계획을 마무리했다.
2005년에는 마지막으로 총무상을 맡아 공무원 감축과 공적 금융기관 통폐합 등을 진두지휘했다.
그는 학자 출신이지만 정치 감각이 뛰어나고,돌파력도 강하다는 평가를 받았다.집권 자민당의 권유로 2004년 7월 참의원(상원 격) 선거에 나가 전국 최고 득표로 당선되기도 했다.
외국으로부터는 '개혁을 실행할 수 있는 인물'로 찬사를 받기도 했다.고이즈미 내각 말기에는 '차기 총리감' 후보로 거론될 정도였다.
본인 스스로 집에서 한국 영화와 한국 음식을 즐긴다고 말할 만큼 한국에 대한 관심도 높다.
저서로는 '경세제민,경제전략회의 180일(1999년)','소프트파워,경제 21세기 전망(1999년)','우정 민영화,작은 정부의 시금석(2005년)','구조개혁의 진실(2006년)' 등이 있다.
고이즈미 총리의 '분신'으로 불리며 정부 개혁의 아이디어 본산이자 사령탑 역할을 했다.2001년 4월 고이즈미 초대 내각 출범 때 발탁돼 경제재정상(장관)을 맡았다.
고이즈미 전 총리가 입각하는 그에게 정부 개혁을 당부하며 "처참한 싸움이 될 것이다.함께 전쟁터로 나가자"고 했다는 말은 지금도 유명하다.
이듬해인 2002년에는 금융상을 겸직하면서 일본 경제의 현안이던 부실 채권 처리를 주도했으며,2004년 우정 민영화 담당상으로 옮겨 일본 정부 개혁의 상징이던 우정성 민영화 계획을 마무리했다.
2005년에는 마지막으로 총무상을 맡아 공무원 감축과 공적 금융기관 통폐합 등을 진두지휘했다.
그는 학자 출신이지만 정치 감각이 뛰어나고,돌파력도 강하다는 평가를 받았다.집권 자민당의 권유로 2004년 7월 참의원(상원 격) 선거에 나가 전국 최고 득표로 당선되기도 했다.
외국으로부터는 '개혁을 실행할 수 있는 인물'로 찬사를 받기도 했다.고이즈미 내각 말기에는 '차기 총리감' 후보로 거론될 정도였다.
본인 스스로 집에서 한국 영화와 한국 음식을 즐긴다고 말할 만큼 한국에 대한 관심도 높다.
저서로는 '경세제민,경제전략회의 180일(1999년)','소프트파워,경제 21세기 전망(1999년)','우정 민영화,작은 정부의 시금석(2005년)','구조개혁의 진실(2006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