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소환된 이학수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삼성의 '2인자'다.이 부회장은 1997년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장을 맡은 이후 1998년 구조조정본부장,2006년 전략기획실장 등 명칭을 바꿔가며 존속해온 삼성의 '컨트롤 타워'를 총지휘해왔다.그는 이건희 회장의 의중을 반영해 그룹의 주요 업무와 의사결정을 처리해 경영권 불법 승계,비자금 조성 및 관리,정ㆍ관계 로비 등 각종 의혹과 관련해 수사의 핵심 인물로 지목됐다.
당초 이 부회장에 대한 소환은 삼성의 각종 의혹 수사가 어느 정도 진행된 다음 이뤄질 것으로 예상됐다.전략기획실에서 비자금 조성 및 관리에 관여한 것으로 지목받은 김인주 전략기획실 사장,최광해 부사장,전용배 상무와 배호원 삼성증권 사장 등에 대한 소환조사 이후에나 이 부회장의 소환이 이뤄질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특검은 본격 출범한 지 35일 만에 이 부회장을 이날 전격 소환했다.한 차례 연장을 포함하면 최장 105일인 특검의 수사기간 가운데 정확히 3분의 1이 지난 시점이다.
특검 주변에서는 이 부회장 소환은 특검이 이건희 회장의 사무실인 승지원과 자택,서울 태평로 삼성 본관과 고위 임원들의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함에 따라 핵심 인물 조기 소환이라는 초강수를 둔 것으로 보고 있다.일각에서는 특검에 소환된 삼성 전ㆍ현직 임원들이 그동안 소환 날짜에 제대로 출석하지 않고 차명 의심계좌에 대해서 자신의 계좌라고 주장하는 등 수사를 방해하고 있다는 판단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특검팀은 이날 반도체 휴대폰 등 생산공장이 있는 삼성전자 수원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도 벌였다.비록 다수의 수사관을 동원하는 방식은 아니었지만 공장에 대한 압수수색이 생산 및 수출에 지장을 초래하는 등 글로벌 기업의 국제적 이미지에 치명타를 줄 수 있는 점을 감안하면 특검의 초강수 행보에는 삼성 측에 '경고'를 보내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이학수 부회장이 조기에 소환됨에 따라 삼성 전략기획실 핵심 임원들에 대한 줄소환도 예상보다 앞당겨질 것으로 보인다.
특검팀은 이날 국세청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도 발부받아 이건희 회장 일가의 과세자료 확보에도 나섰다.
윤정석 특검보는 이건희 회장 일가의 재산 관련 납세자료임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분명한 어조로 "그렇다"고 답변하는 등 그동안 수사내용과 관련해 모호하게 답변하던 것과 사뭇 다른 태도를 보였다.국세청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이 회장 일가의 재산 내역과 주식 변동ㆍ부동산 거래 등에 대한 보유세ㆍ증여세 등 과세자료 등을 확보한 특검은 삼성 최고위층으로 수사망을 좁혀갈 것으로 보인다.
정태웅 기자/수원=김민지 인턴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