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비자금 의혹을 수사 중인 조준웅 특별검사팀은 14일 오후 이학수(62) 삼성전자 부회장 겸 전략기획실장을 피고발인 자격으로 불러 피의자 신문조서를 받았다.

이 부회장은 이날 오후 7시께 삼성측 변호인단의 이완수 변호사와 함께 서울 한남동 특검 사무실에 나와 취재진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채 곧장 조사실로 향했다.

그는 이날 4시간 가량 집중적인 조사를 받은 뒤 오후 11시10분께 7층 조사실에서 나왔으며 취재진에게 "여러모로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 드려 송구스럽다"는 말을 남기고 귀가했다.

이 부회장은 1997년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장을 맡은 이후 1998년부터 2006년까지 구조조정본부장을 맡았으며 2006년 구조본이 전략기획실로 바뀐 이후 전략기획실장을 맡아온 삼성그룹의 `2인자'다.

그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의중과 경영철학을 가장 잘 알고 있고 그룹의 주요 업무 처리와 의사결정 과정에 깊숙이 관여해 `삼성 비자금 의혹' 수사의 핵심 인물로 알려져 있다.

삼성 의혹을 제기한 김용철 변호사와 시민단체 등은 이 부회장이 그룹의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고 재무를 총괄하기 때문에 비자금 조성ㆍ운용과 경영권 불법 승계 등에 관여했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었다.

이 부회장은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발행 등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사건들과 그룹 차원의 차명계좌 관리 및 비자금 조성, 정ㆍ관계 로비 의혹 등에 대한 참여연대측의 고발 사건 등의 피고발인이기도 하다.

특검팀은 이 부회장을 상대로 차명계좌 개설을 주도했는지와 비자금 조성 및 유력인사 로비 등에 관여했는지 등을 캐물으며 각종 사실관계들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팀 관계자는 "이 부회장을 상대로 전반적인 의혹 사항에 대해 기초조사를 받았다"고 밝힌 뒤 "앞으로 (특검 사무실에) 많이 나와야 한다"며 이 부회장에 대한 재소환 방침이 이미 세워졌음을 시사했다.

이날 조사 시간이 비교적 짧은 점에 비춰 이 부회장은 에버랜드 사건과 관련해서는 기존의 검찰 수사에서의 진술 내용을 고수하고 다른 사건들에 대해서도 의혹을 대부분 부인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검팀은 이 부회장의 소환을 시작으로 향후 김인주 사장 등 그룹 전략기획실 핵심 관계자들과 이건희 회장 일가에 대해서도 소환조사를 벌이기로 하고 일정을 조율 중이다.

한편 특검팀은 삼성측이 비자금을 관리했을 것으로 의심되는 금융계좌들 중 일부가 삼성화재 등 계열사 사외이사 명의의 차명계좌 형태로 운용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진은 해당 계좌에서 개설 직후 거액이 현금으로 인출됐다거나 단순한 비밀번호로 관리되는 등 차명계좌로 의심할만한 단서가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계좌추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연합뉴스) 임주영 안희 이한승 기자 zoo@yna.co.krprayer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