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貸株)거래가 하락장에 투기적인 목적으로 이용되기보다 개인들에게 새로운 주식 투자의 헤지수단을 제공하게 되길 바랍니다.주식시장의 급등락을 막는 '시장의 안전판'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합니다."

한국증권금융에서 대주업무를 맡고 있는 추선호 영업본부장은 "대주거래야말로 지금처럼 급등락장에서 개인투자자들이 한결 가벼움 마음으로 투자하기에 적합한 제도"라며 이같이 말했다.개인투자자들이 증권사에서 주식을 빌려 팔 수 있는 대주거래 서비스가 21년 만인 지난달 21일부터 재개됐다.

추 본부장은 대주거래가 무엇인지에서부터 얘기를 시작했다."쉽게 생각하면 개인투자자가 증권사로부터 주식을 빌려 미리 팔고 정해진 기간 안에만 주식으로 갚으면 되는 제도입니다.예컨대 현재 증권금융이 주식을 빌려주고 있는 국민은행 주식의 주가가 앞으로 하락할 것으로 판단했다고 칩시다.그러면 대주를 시행하는 증권사에 가서 국민은행 주식을 빌려 미리 팔고 주가가 하락했을 때 시장에서 주식을 싼 값에 되사 갚으면서 수익을 내는 구조죠."

한 마디로 말하면 주가가 내려갈 것으로 예측될 때 선물이나 옵션 외에도 개인투자자들이 투자할 곳이 생겼다는 얘기다.작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불거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에 따른 경기침체 우려로 증시가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요즘 더욱 절실한 투자 방안이다.

하지만 그는 대주거래에 전적으로 의존해 하락장에 베팅하면 손실은 일반 주식투자시보다 훨씬 커진다고 강조했다."주식을 빌릴 때 증거금이 40%입니다.1000만원어치를 빌릴 경우 400만원을 예치해야 한다는 것이죠.때문에 250%의 레버리지(지렛대) 효과가 생기게 됩니다.만약 방향 예측이 어긋나면 일반 주식 투자시보다 2.5배의 손실이 생기는 셈이죠."

대주거래가 단순히 하락장을 예측해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에 그치지 않는단다."대주거래 서비스를 제대로 이해하면 투기적인 목적보다는 '헤지'나 '무위험 거래' 등에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을 보유한 투자자를 예로 들어 볼까요.해당 주식의 현재 주가가 전환가격보다 높을 경우 증권사로부터 주식을 빌려 미리 팔고 CB를 주식으로 전환하거나 신주인수권을 행사해 반환하면 현재가와 전환가와의 차이만큼은 아무런 위험없이 이익을 취할 수 있게 되죠.전환가격 밑으로 떨어진 부분에 대해선 대주거래를 통해 자동으로 헤지가 되니까요."

또 지금과 같이 불확실한 장에서 새로운 종목을 매입할 때에도 대주거래가 리스크를 헤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사실 이러한 거래는 지금까지 기관이나 외국인들이 곧잘 활용해온 투자기법이다.실제 세계 경기 침체 조짐이 일자 신규 선박 발주량이 줄어들 것으로 예측한 외국인들은 지난달 31일과 이달 초 국내 조선주를 빌려 미리 팔았다.추 본부장은 "일부 외국계 투자은행(IB)들이 갑자기 국내 조선주들의 목표주가를 현저히 낮추고 매물을 쏟아내면서 조선주들의 주가가 급락했다"며 "이 때문에 조선주에 투자한 개인들은 하루아침에 수천만원씩 날리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아쉬워했다.

덕수상고를 졸업하고 입사한 후 36년간 줄곧 증권금융에서만 근무한 그는 이러한 상황을 수없이 봤다고 했다.주식시장이 하락세에 접어들지 않아도 외국인과 기관들이 대주거래를 이용해 물량을 더 쏟아내면 주가 하락이 지속되고 이를 견디지 못한 개인들이 어쩔 수 없이 손절매에 동참하는 사례가 많았다는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증권금융이 작년부터 개인에 대한 대주거래 서비스를 준비해 올해 초부터 시행하게 됐다는 설명이다.주가 하락이 예상될 경우에 개인투자자에게도 기관이나 외국인과 똑같은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1974년부터 해오던 개인에 대한 대주거래 서비스가 1986년 중단된 것은 한 해 전인 1985년 말 대주잔액이 34억원에 그치고 대주가능 종목 수도 30개밖에 안됐기 때문입니다.대주거래를 하기 위해선 빌려줄 주식이 있어야 하는데 지난해 금감원이 미수거래를 중단시키면서 신용융자가 늘어 대주거래를 다시 시행할 여지가 생겼죠."

개인 대주거래 서비스가 재개된지 한달도 안된 사이 이용하는 개인 투자자들도 꾸준히 늘고 있단다.개인투자자들은 지난달 23일 7억원의 주식을 빌려간 것을 시작으로 지난 14일까지 모두 332억원어치의 주식을 빌려 팔았다.추 본부장은 "이 같은 추세라면 올해 안에 신규 대출 규모가 3000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지금은 굿모닝신한 현대 키움증권 등 3개 증권사의 고객만 대주거래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이 서비스를 올해 안으로 한국투자 하나대투 우리투자 미래에셋증권 등 11개 증권사로 확대해 시행할 계획이구요.신속한 시행을 위해 이들 증권사에 업무 프로그램 등을 지원하고 있는 상황입니다.물론 현재 143개인 대주가능 종목 수도 더 늘릴 계획입니다."

그는 "대주거래가 상장된 대부분 종목까지 늘어나면 시장 환경에 따라 주가가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이 줄어들고 단기 충격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는 '시장 안전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김재후/사진=양윤모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