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역죄인에게 가하는 형벌 중 능지처참이란 게 있다.팔다리를 찢어 죽이는 극형이다.정부조직 개편 작업이 시작되자 정보통신부 공무원들은 "우리가 무얼 잘못했길래 능지처참을 당해야 하느냐"며 울분을 토했다.정통부를 없애고 기능을 지식경제부 행정안전부 문화부 방송통신위원회로 이관하겠다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측 처사가 못마땅했던 것이다.

정통부 장관은 지난달 16일 열린 '정보통신인 신년인사회'에서 "소처럼 우직하게 일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하며 울먹이기도 했다.'정보기술(IT) 강국'을 이끌었다고 자부해온 부처의 수장으로서 감정이 복받쳤던 것 같다.

20여년 전 IT업계와 인연을 맺은 필자로서는 이해할 만했다.IT산업이 미래 성장동력이란 점을 감안한다면 정통부를 굳이 네 토막으로 나눌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도 했다."한국 정통부를 벤치마킹한 국가도 많다"는 얘기에도 일리가 있다.

정통부를 해체한다는 말을 처음 듣는 순간 떠오른 생각은 '결국 칼을 맞는구나'였다.은근히 화가 치밀기까지 했다.통신ㆍ방송 융합을 질질 끌지 말라고 그토록 채근해도 말을 듣지 않더니….방송과 통신을 아우르는 정부 조직을 신설하고 인터넷TV(IPTV)를 비롯한 방통융합 산업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면 과연 정통부 폐지론이 나왔을까.

"우린들 빨리 하기 싫었겠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그러나 4년 이상 허비한 데 대해서는 변명하지 않는 게 좋다.필자는 수년 전 "정통부가 움직이지 않는다"느니 "(뜨거운) 감자를 국회로 넘겼다"는 말을 여러 사람한테 들었다.적어도 참여정부 전반기에는 정통부가 난관을 뚫기 위해 백방으로 뛴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방통융합을 서두르지 않았다는 사실만 가지고 말하는 게 아니다.소프트웨어 산업은 또 어땠는가."소프트웨어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IT 강국'도 사상누각"이라고 많은 사람이 지적했다.그런데도 한참 동안 소프트웨어를 의붓자식 취급을 했다.오죽했으면 업계 사장들이 만나기만 하면 장관 욕을 했을까.

정보통신업계를 위해 성의껏 봉사했는지도 반성해 봐야 한다.수년 전 얘기지만 "사장님,내일 좀 나와주시죠"란 한 마디 때문에 해외출장을 취소했다는 불만도 나왔다.로봇산업 게임산업 관할 문제를 놓고 산자부 문화부랑 다투는 모습도 보기 좋지 않았다.열심히 일하다 보면 언성을 높일 수도 있겠지만 "혼자 잘난 척 한다"는 말은 듣지 말았어야 했다.

인수위 측은 정통부 기능의 3분의 2가량을 신설 방통위원회에 두기로 했다고 한다.조직을 박살내 정책 효율이 떨어질까 걱정했는데 잘된 것 같다.방통융합을 주도할 체제를 갖추면서 마찰을 빚는 분야만 정리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중요한 것은 정통부 조직이 살았느냐 죽었느냐가 아니다.조직 대부분이 남았더라도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살았다고 볼 수 없다.큰 수술을 받은 사람은 욕심을 버리고 겸손한 자세로 살아간다고 들었다.방통위 출범을 계기로 국민과 업계를 위해 더욱 봉사하는 조직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김광현 IT부장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