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자업체인 도시바가 반도체 업계 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를 통해 '부동의 낸드플래시 업계 1위'인 삼성전자 추월에 나섰다. 내년까지 15조원 이상을 투입해 일본 내에 낸드플래시 공장 2곳을 새로 짓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현재 낸드플래시 시장의 4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2위인 도시바의 격차가 급격히 좁혀질 전망이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삼성전자가 최근 비자금 특검수사 여파로 올해 투자계획조차 확정짓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이번 도시바의 공세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특검으로 손발이 묶인 삼성전자가 '도시바의 공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가 2001년부터 8년째 고수하고 있는 세계 낸드플래시 업계 1위 자리를 당장 내년 이후 도시바에 내줄 가능성이 높아졌다.

18일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에 따르면 도시바는 이번 주 중 이사회를 열고 내년까지 이와테현과 미에현에 낸드플래시 공장 2곳을 신설한다는 계획을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

신규라인 증설에 들어갈 투자금액은 무려 1조8000억엔(약 15조7723억원)에 달한다. 당초 도시바는 신규공장 증설에 1조4000억엔을 투입할 예정이었으나,최근 차세대 DVD사업을 포기하기로 결정하고 잉여 투자여력을 반도체 부문에 집중키로 했다.

도시바가 신설할 두 공장은 300㎜웨이퍼를 사용하는 첨단공정을 갖추고 내년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신설될 두 공장의 양산 규모는 300㎜웨이퍼 투입기준으로 각각 월 18만장이다.

이로써 도시바는 현재 4곳인 낸드플래시 양산라인을 내년까지 6개로,양산 규모도 현재 월 20만장(300㎜웨이퍼 투입기준)에서 내년 말 월 80만장으로 늘리게 된다.

업계는 이 같은 도시바의 투자계획이 예정대로 집행될 경우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도시바의 순위가 일시에 뒤바뀔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는 경기도 기흥과 화성,미국 오스틴 등에 있는 7개 라인에서 월 25만~26만장(300㎜웨이퍼 투입 기준)의 낸드플래시를 양산,세계 시장의 41.2%를 점유하고 있다. 도시바의 점유율은 22.4%이며 하이닉스가 20.9%로 3위를 기록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대규모 신규투자보다는 기존 라인 증설 등 소극적인 투자만을 해왔던 도시바가 주력사업으로 키우던 HD-DVD사업까지 접고 반도체에 '올인'하겠다고 나섰다는 점에서 이번 도시바의 공세는 예전과 분명 다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번 도시바의 공세는 삼성전자를 주요 타깃으로 한 것이다. 도시바는 낸드플래시의 원천기술을 보유했던 업체로 1990년대 후반까지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을 석권했었다. 하지만 1998년 낸드플래시 사업에 뛰어든 삼성전자에 3년 만인 2001년 '낸드플래시 1위' 자리를 내주는 굴욕을 당했다.

이후 도시바는 기존 200㎜웨이퍼 라인을 첨단 공정인 300㎜웨이퍼 라인으로 전환하고,50나노 이하급 미세공정 개발에 나서는 등 '삼성 따라잡기'에 주력했다. 이런 공세에 맞서 삼성전자는 지금까지 대규모 신규투자와 앞선 기술력으로 도시바의 추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도시바의 공세에 직면한 삼성전자는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40일 넘게 압수수색과 임직원 소환을 거듭하고 있는 비자금 특검의 여파로 아직까지 신규 투자 계획조차 못잡고 있는 상황에서 반도체 업계의 만만치 않은 도전자인 도시바의 공세에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실제 삼성전자는 지난달 기업설명회(IR)에서 올해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증설투자에 7조원을 투입할 계획이라는 잠정발표만 해놓고 있는 상태다. 그나마 이마저도 신규공장 신설보다는 기존 라인 증설 등 최소폭으로 잡고 있는 상태다.

이날 니혼게이자이 신문 보도를 접한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도시바가 정말 15조원을 투자하겠다고 결정했느냐"라고 반문하면서 "(정말이라면) 특검 때문에 손발이 다 묶인 상황에서 우리로서는 대응할 방법이 없는데…"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태명 기자/도쿄=차병석 특파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