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관료로 관료를 극복하라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현황―문제점―대안,이런 식으로 딱 떨어지는 브리핑을 몇 번 듣고 나면 안 넘어오는 대통령이 없다."
몇 년 전 청와대에 근무하던 한 경제관료가 사석에서 자랑스레 들려준 얘기다.정권을 잡은 대통령들은 초기엔 개혁을 위해 기존 관료를 배제하고 참신한 교수 출신을 참모로 중용한다.그러나 이상과 의욕만 넘쳐 현실을 건너 뛰기 일쑤인 교수들과 달리 난해한 현안을 입맛에 꼭 맞게 요리해주는 프로 관료들에게 대통령은 점차 포위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얘기다.
개혁의 기치를 내걸었던 김영삼 정부 이후 정권의 청와대 첫 경제수석 등 핵심 참모는 예외없이 교수 출신이었다.김영삼 정부 때 박재윤 경제수석(서울대 교수 출신),김대중 정부 때 김태동 경제수석(성균관대 교수),노무현 정부의 이정우 정책실장(경북대 교수) 등이 그랬다.
전문지식과 개혁의지로 무장한 교수 출신들은 당당히 청와대에 입성한다.하지만 머지 않아 관료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쓸쓸히 퇴장하곤 했다.'신경제 전도사'로 YS정권 초기 경제정책을 주물렀던 박 전 수석은 관료들의 견제로 1년여 만에 힘을 잃었다.그가 떠난 자리는 경제기획원에서 잔뼈가 굵은 한이헌씨가 차지했다.
김태동 전 수석은 개혁과 분배의 'DJ노믹스'를 추진하다 관료들과의 마찰 끝에 3개월 만에 자리를 옮겼다.후임은 관료출신 강봉균씨였다.이정우 전 실장도 '빈부격차의 뿌리는 부동산 투기'라며 강도 높은 부동산 정책을 주도했지만 결국 관료들에게 밀려난 꼴이 됐다.
출범을 닷새 앞둔 이명박 정부도 첫 경제수석(김중수 한림대 총장) 국정기획수석(곽승준 고려대 교수) 등 핵심 참모를 교수들로 채웠다.청와대 수석 7명 중 정무수석을 제외한 6명이 교수 출신이다.정부조직 축소,규제철폐,영어 공교육 강화 등 개혁을 위해선 관료보다 교수 출신이 적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그러나 그들의 성공 여부도 역시 미지수다.
이 대목에서 주목해볼 만한 게 일본 고이즈미 정권 때 '구조개혁 사령탑'을 맡았던 다케나카 헤이조 게이오대 교수 케이스다.그는 고이즈미 전 총리 임기(2001~2006년) 내내 경제재정상 금융상 총무상 등을 잇따라 맡아 굵직한 개혁들을 성공시켰다.개국 이래 최대 민영화 작업이었던 우정공사 민영화,정책금융 통폐합,공무원 개혁,공적자금 투입을 통한 금융권 부실정리 등이 그의 '작품'이다.
교수 출신인 그가 관료들의 견제와 저항을 어떻게 이겨내고 개혁을 성공시킬 수 있었을까.최근 만난 그는 비결을 이렇게 소개했다."관료들을 이기려면 그들보다 세부적인 내용을 더 깊이 알아야 한다.난 재무성 경제산업성 등의 최고 엘리트 관료 5~6명을 뽑아 개혁 과제별 특별팀을 만들었다.해당 분야의 베테랑들이었다.관료들이 개혁에 저항하기 위해 내세우는 논리의 허점을 가장 잘 아는 게 관료들 자신 아닌가.단 특별팀 멤버는 사표를 써놓고 일했다.관료 집단의 이해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다.출신 부처로 돌아가지도 못하게 했다.그들은 지금 대부분 교수가 돼 있다.난 그들이 일본을 변화시켰다고 믿는다."
'관료에 의한 관료 극복.' 청와대에 입성할 교수 출신 참모들도 고려해 볼만한 전략이 아닐까 싶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
몇 년 전 청와대에 근무하던 한 경제관료가 사석에서 자랑스레 들려준 얘기다.정권을 잡은 대통령들은 초기엔 개혁을 위해 기존 관료를 배제하고 참신한 교수 출신을 참모로 중용한다.그러나 이상과 의욕만 넘쳐 현실을 건너 뛰기 일쑤인 교수들과 달리 난해한 현안을 입맛에 꼭 맞게 요리해주는 프로 관료들에게 대통령은 점차 포위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얘기다.
개혁의 기치를 내걸었던 김영삼 정부 이후 정권의 청와대 첫 경제수석 등 핵심 참모는 예외없이 교수 출신이었다.김영삼 정부 때 박재윤 경제수석(서울대 교수 출신),김대중 정부 때 김태동 경제수석(성균관대 교수),노무현 정부의 이정우 정책실장(경북대 교수) 등이 그랬다.
전문지식과 개혁의지로 무장한 교수 출신들은 당당히 청와대에 입성한다.하지만 머지 않아 관료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쓸쓸히 퇴장하곤 했다.'신경제 전도사'로 YS정권 초기 경제정책을 주물렀던 박 전 수석은 관료들의 견제로 1년여 만에 힘을 잃었다.그가 떠난 자리는 경제기획원에서 잔뼈가 굵은 한이헌씨가 차지했다.
김태동 전 수석은 개혁과 분배의 'DJ노믹스'를 추진하다 관료들과의 마찰 끝에 3개월 만에 자리를 옮겼다.후임은 관료출신 강봉균씨였다.이정우 전 실장도 '빈부격차의 뿌리는 부동산 투기'라며 강도 높은 부동산 정책을 주도했지만 결국 관료들에게 밀려난 꼴이 됐다.
출범을 닷새 앞둔 이명박 정부도 첫 경제수석(김중수 한림대 총장) 국정기획수석(곽승준 고려대 교수) 등 핵심 참모를 교수들로 채웠다.청와대 수석 7명 중 정무수석을 제외한 6명이 교수 출신이다.정부조직 축소,규제철폐,영어 공교육 강화 등 개혁을 위해선 관료보다 교수 출신이 적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그러나 그들의 성공 여부도 역시 미지수다.
이 대목에서 주목해볼 만한 게 일본 고이즈미 정권 때 '구조개혁 사령탑'을 맡았던 다케나카 헤이조 게이오대 교수 케이스다.그는 고이즈미 전 총리 임기(2001~2006년) 내내 경제재정상 금융상 총무상 등을 잇따라 맡아 굵직한 개혁들을 성공시켰다.개국 이래 최대 민영화 작업이었던 우정공사 민영화,정책금융 통폐합,공무원 개혁,공적자금 투입을 통한 금융권 부실정리 등이 그의 '작품'이다.
교수 출신인 그가 관료들의 견제와 저항을 어떻게 이겨내고 개혁을 성공시킬 수 있었을까.최근 만난 그는 비결을 이렇게 소개했다."관료들을 이기려면 그들보다 세부적인 내용을 더 깊이 알아야 한다.난 재무성 경제산업성 등의 최고 엘리트 관료 5~6명을 뽑아 개혁 과제별 특별팀을 만들었다.해당 분야의 베테랑들이었다.관료들이 개혁에 저항하기 위해 내세우는 논리의 허점을 가장 잘 아는 게 관료들 자신 아닌가.단 특별팀 멤버는 사표를 써놓고 일했다.관료 집단의 이해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다.출신 부처로 돌아가지도 못하게 했다.그들은 지금 대부분 교수가 돼 있다.난 그들이 일본을 변화시켰다고 믿는다."
'관료에 의한 관료 극복.' 청와대에 입성할 교수 출신 참모들도 고려해 볼만한 전략이 아닐까 싶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