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택 < 중앙대 정경대학장·경제학 >

미국 서브프라임 주택저당 채권의 부실이 커지면서 서구 금융회사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서브프라임 문제가 처음으로 수면위로 떠올랐던 작년 초만 해도 금융회사의 추정손실액이 많아야 1000억달러였으나 지금은 6000억달러까지 예상하고 있다.

여기에다 서브프라임 사태 초기에 금융사들이 부실을 감추기 위해 불투명한 회계처리를 한 것이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서브프라임 대출채권은 위험도에 따라 몇 단계에 거쳐 가공돼 담보저당증권(CDO)이라는 파생상품으로 다시 태어난다.그러나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어진 채권의 가치를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채권수익의 근원인 서브프라임 주택대출의 원리금 상환에 문제가 발생할 때,채권 손실액을 정확히 예측하기는 불가능하다.그런데 해당 금융사들은 손실을 감추기 위해 손실액을 과소평가하는 회계처리방법을 선택했다.나중에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감독당국이 엄격한 손실처리기준 적용을 요구하면서 손실액은 확대됐다.더구나 주요 은행들이 SIV라는 특수 자회사를 통해 서브프라임 관련 채권 투자를 한 것도 밝혀지면서 문제는 더욱 커졌다.10년 전 우리가 외환위기를 겪을 때 서구 금융당국에 의해 누누이 질책 받았던 불투명한 회계처리 관행이 이번에는 바로 선진 금융사들에 의해 자행된 것이다.

우리나라 금융사는 미국 서브프라임과 같은 금융위기로부터 자유로운가? 우리 금융사들이 미 서브프라임 관련 채권에 투자한 금액은 크지 않다.가장 많이 투자한 우리은행이 5000억원을 손실 처리했으나,이는 총이익 규모에 비해 볼 때 감당할 만한 수준이다.

문제는 주택담보대출이다.우리나라도 그간 폭등했던 주택가격이 안정세로 돌아서고 있다.여기다 올해 경기가 나빠지면서 연체율도 높아질 것으로 우려된다.그러나 주택가격의 90%까지 대출해주는 미국과 달리 우리의 주택담보비율(LTB)은 높아야 50% 정도다.그러므로 집값이 반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한 금융사가 입는 직접적 손실은 크지 않다.또한 우리는 주택담보를 기초로 유동화시킨 채권도 없으므로 최초 대출자 이외에 다른 투자자들이 입는 손해도 없다.역설적이지만 금융기법의 미발달로 인해 서브프라임과 같은 금융위기는 원천적으로 발생할 수 없다.

문제는 오히려 기업부문에서 나타난다.서브프라임사태로 인해 금융시장에서 투자자들의 안전자산 선호도가 커지면서 회사채 위험도에 대한 가산금리가 높아졌다.신흥시장 기업의 경우 가산금리가 100BPS(1%P) 이상 상승했다.우리나라 일부 대기업은 해외발행 회사채의 만기 연장에도 곤란을 겪고 있다.더욱 우려되는 것은 국제수지가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까지는 60억달러 정도의 경상수지흑자를 내며 외환보유고도 2600억달러 수준을 유지해 왔다.그런데 올해 들어 1월 한 달 동안의 무역수지 적자만도 34억달러다.2월 들어서도 무역수지는 비슷한 추세의 적자를 보이고 있다.다행히 아직까지는 국내 주식시장에서 매도한 외국인 자금이 국내 채권시장으로 흘러들어가 외환보유고의 급격한 감소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무역수지가 현 추세대로 악화되고 국내외 이자율 격차가 줄어 외국인 채권투자액까지 해외로 급격히 유출되면 문제는 심각해진다.외환보유고가 감소하고 신용위험이 높아져 기업의 해외자금 조달 금리는 더욱 높아지게 된다.우리 경제는 외부환경 악화로 인해 성장동력을 내수부문에서 찾아야 하는데,국제수지 문제로 그나마 선택할 수 있는 정책의 폭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