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비용.美 경기둔화.中 긴축 등 우려할 점 많아"

국제유가가 사상 처음으로 종가 기준 100달러를 넘어서면서 증시에 미칠 악영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3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 중질유(WTI)는 지난주 종가보다 4.51달러(4.7%)나 급등한 배럴당 100.01달러에 거래를 마쳐 사상 처음 종가 기준으로 100달러를 넘어섰다.

전문가들은 지금 당장 그 충격이 크지 않더라도 국내 기업의 비용 증가, 미국의 경기둔화 및 금리 추가인하에 대한 부담감, 중국의 긴축정책 강화 가능성 등 여러 측면에서 서서히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 "유가 급등, 여러 측면에서 증시에 부정적" = 유가 100달러 돌파는 최근 국내 증시의 반등 추세에 찬물을 끼얹는 악재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최근 국내 증시가 반등을 할 수 있었던 요인은 미국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공격적인 금리 인하로 미국 경기침체 우려가 줄어든 데다 국내 기업의 이익 성장세가 견조하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제 유가의 급등 추세는 이 두 요인 모두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우선 우려되는 것은 원유, 곡물, 철광석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최근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미국 내의 인플레이션 우려도 갈수록 커져 FRB의 금리인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증권의 김학주 리서치센터장은 "지금까지는 금리인하가 호재로 작용했으나 인플레이션이 실제로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 금리인하가 단행된다면 과연 시장에서 이를 호재로 받아들일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기업의 수익성 감소도 불가피하다.

지난달 수입물가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1.2% 상승해 1998년 10월(25.6%) 이후 9년여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기업들의 비용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철광석 수입 가격도 지난해보다 65%나 치솟아 철강 소비가 많은 조선, 자동차, 건설 등의 원가 부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교보증권의 이종우 센터장은 "올해 기업 이익이 지난해보다 14~15%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이 많지만 최근의 원자재 가격 급등과 미국 경기둔화 등이 반영된다면 기업 이익은 소폭 증가나 최악의 경우 작년보다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또 중국의 1월 소비자물가지수가 7.1%로 치솟으며 1997년 이후 11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것에 더해 이번에 유가까지 급등하자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중국의 긴축정책이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유가 100달러 돌파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가격 추이를 좀더 지켜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굿모닝신한증권의 김중현 애널리스트는 "만약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미국이 유가 안정을 위한 공조에 합의하고 봄철 비수기에 들어간다면 유가는 100달러 밑으로 떨어져 그 영향이 크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업종별로 `희비' 엇갈려 = 고유가에도 불구하고 일부 업종은 증시에서 `고유가 수혜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표적인 수혜주는 풍력발전, 태양광발전 등 대체에너지 관련 주식을 들 수 있다.

삼성증권의 송준덕 애널리스트는 "세계적으로 태양광발전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어 태양전지 제조에 필요한 폴리실리콘, 모노실란 등을 제조하는 국내업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또 풍력발전의 경우 주요 풍력발전 부품을 생산하는 국내 단조업체들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유가로 막대한 오일달러를 벌어들이는 중동 국가가 발주하는 대규모 플랜트 및 사회간접자본(SOC) 프로젝트를 수주할 역량을 지닌 국내 건설.플랜트업계도 수혜주로 꼽힌다.

조선 부문에서는 고유가로 인해 심해 석유시추선 등의 발주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이들 선박 제조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지닌 국내 조선업체들의 수혜가 예상된다.

반면 화물 운송에 석유를 주연료로 사용하는 항공이나 해운업체 그리고 주재료가 원유인 석유화학업종은 상당한 피해가 예상된다.

이밖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에 더해 고유가의 파장으로 미국의 경기둔화가 가속화될 경우 미국으로의 수출 비중이 큰 자동차나 IT업종도 피해가 우려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더구나 미국 경기침체 등으로 원자재 가격 상승 등 비용이 늘어난 부문을 최종 판매 가격에 전가시키지 못할 경우 기업의 전반적인 수익성은 지속적으로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은 큰 우려를 낳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의 김학균 애널리스트는 "미국 생산자물가지수(PPI)와 소비자물가지수(CPI)의 동향을 보면 지난해 3월부터 CPI 상승률보다 PPI 상승률이 더 높은 것을 알 수 있다"며 "이는 생산업체들이 원자재 가격 상승을 제품 판매가격에 충분히 반영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안승섭 기자 ss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