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도로 '포스트 교토체제'를 논의하는 국제회의인 제2차 기후변화 주요국 회의(MEM)가 열린 지난달 30일 하와이 호놀룰루의 하와이대학 내 이스트웨스트센터.정사각형 모양의 협상 테이블에 둘러앉은 17개국 대표들의 얼굴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이들은 각국 정부를 대표하는 차관급 관료들이다.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새로운 국제 규칙이 어떻게 결정되느냐에 따라 자국 경제성장과 기업들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에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결연한 표정이었다.

먼저 독일과 영국 대표가 국가와 기업별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할당해 이 목표를 달성토록 강제하는 '구속적 감축' 방식을 주장하며 포문을 열었다.그러자 중국과 인도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과거 온실가스에 대한 규제를 전혀 받지 않고 경제성장을 하면서 지구 온난화의 원인을 제공한 선진국들이 신흥 공업국들에 과중한 부담을 짊어지게 한다는 논리였다.

◆포스트 교토,주도권 경쟁

포스트 교토체제를 둘러싼 외교전은 이미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국제사회는 2009년 말을 협상 시한으로 합의한 상태다.올해는 △유럽연합(EU)이 주도하는 유엔 기후변화 협약(UNFCCC) △미국이 이끄는 기후변화 주요국 회의 △기후변화 특별 정상회의라는 별칭이 붙은 G8(주요 8개국)회담 등 포스트 교토체제의 운명을 결정할 회의가 줄줄이 열린다.국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한국의 전략적 대응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미국은 지난해 9월 워싱턴에서 제1차 기후변화 주요국 회의를 열어 EU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UNFCCC에 대한 견제를 본격화했다.미국은 각국의 경제성장과 이에 따른 에너지 사용량 증가를 존중하면서 청정 기술 개발과 확산을 통해 탄소 배출량을 줄이자고 주장하고 있다.타율적 의무 감축을 주장하는 EU와는 정반대인 청정 기술을 통한 자율적 감축이 미국 측 입장이다.

EU 집행위원회는 미국의 공세에 대응해 지난달 EU 회원국별로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 실천계획을 담은 'EU 온난화 방지 패키지'를 발표하고 결연한 의지를 내보였다.특히 기업들이 그동안 무료로 받았던 기본 배출 허용량을 2013년부터 축소하기 시작,2020년까지 100% 경매를 통해 구입토록 했다.그만큼 기업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EU 기업들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집행위원회는 EU 기업들의 경쟁력 저하를 막기 위해 EU에 수출하는 기업들에 가칭 '탄소 수입관세'를 매길 수도 있다며 기업들을 달래고 있다.EU의 온난화 방지 패키지가 2009년 말 이전에 발효되긴 어려울 전망이지만 탄소 수입관세가 현실화될 경우 한국 기업들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된다.

◆한국의 선택,"성장기반 훼손은 안된다"

EU가 탄소 수입관세 계획까지 내놓아 한국도 상당한 부담을 각오해야 할 형편이다.하지만 성장 기반이 위협받는 수준까지 부담을 떠안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대한상의 부설 지속가능경영원 박영우 원장은 "제조업에서 금융서비스업으로 산업의 체질을 바꿔 온실가스에 대한 부담이 거의 사라진 영국과 과거 동독지역을 CDM사업의 장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는 독일이 중심이 돼 주장하는 구속적 의무 감축 방식을 우리나라가 그대로 따라해 성장기반을 약화시킬 순 없다"고 주장했다.박 원장은 "산업계는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20% 정도를 차지하고 수송부문과 가정 등의 비중이 40%에 달하는 실정을 감안하면 기업의 노력만으론 부족하다"며 "국가 전체적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대 지구환경과학과 이병욱 교수는 "비구속적,자율적 감축이라는 우리의 입장을 국제사회에 분명히 천명할 필요가 있다"며 "산업계도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는 자구 노력에 더 힘써야 하고 기후 친화적 성장전략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 관건은 청정기술이라며 기업들이 청정기술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이를 제값을 받고 손쉽게 거래할 수 있는 체제가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뉴욕ㆍ런던ㆍ웨이번(캐나다)ㆍ네이멍구(중국)=박성완/장경영/김유미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