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시대의 종말'로 해석되기도 하는 서브프라임 사태.실체파악이 어렵고 파장도 예측불가여서 궁금한 게 한둘이 아니다.그 중 하나가 파생투자를 많이 한 골드만삭스는 멀쩡한데,왜 자산관리가 전공인 메릴린치가 막대한 손해를 봤을까 하는 점이다.

며칠 전 만난 한 외국계 증권사 대표가 궁금증을 풀어줬다."골드만삭스는 수상한 낌새를 차리고 작년 상반기부터 투자를 청산하기 시작했습니다.그러자 할 일이 없어진 파생상품담당 직원들이 대거 메릴린치로 이동한 게 결정타였습니다.메릴린치로 옮긴 이들이 새 직장에서 한 건 터트려야 한다는 조급함에다,성과연동 보너스 욕심에 위험신호를 무시하고 '베팅'하다 쪽박찬 겁니다."

미국 월가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요즘 한국에서 파생이나 IB(투자은행)업무가 각광받지만 제대로 된 위험관리시스템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비참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브프라임 사태의 정점에서 이명박 정부가 인선을 마무리짓고 출범을 기다리고 있다.당면한 위기를 돌파하고 7%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시대적인 소명을 떠맡은 내각과 청와대 비서진의 면면에서 전문성과 경륜이 돋보인다는 평가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사태를 불러온 미국식 '시장만능주의'에 익숙한 인사들 일색인 게 꺼림칙한 부분이다.한승수 국무총리 후보자는 SK그룹 경영권을 위협했던 소버린과 한 배를 탄 전력이 있다.대통령의 신임이 각별하다는 김병국 외교안보수석 내정자는 '국제투기자본의 대명사'로 불리는 조지 소로스가 서울증권을 인수한 직후 사외이사로 발탁돼 지금까지 7년간 그의 이익을 대변했다.

소버린이나 소로스를 일방적으로 매도할 생각은 없다.국제금융시장 발전을 주도한 선구자로 대접하고 배워야 할 점도 있다.

하지만 '무차별적인 이익추구'라는 투기자본의 속성을 분명히 갖고 있다.새 정부가 조급한 성과에 집착해 국제투기자본의 양면성을 간과하고,결과적으로 국내자본을 역차별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백광엽 증권부 기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