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가 걷잡을 수 없이 뛰고 있다. 소비자물가에 이어 생산자물가,수입물가 그리고 원재료물가에 이르기까지 물가란 물가는 모두 가파르게 뜀박질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사재기' 현상이 벌어지는 등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확산되면 물가상승분을 임금에 반영하려는 요구가 높아지게 되고 이것이 다시 인플레이션을 부르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원재료 물가 폭등

최근 물가 상승 압력의 진원지는 국제 원유와 농산물 등 원재료다. 21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1월 가공단계별 물가'에 따르면 지난달 원재료 물가는 전년 동월대비 45.1% 올랐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1월(57.6%) 이후 최고 상승률이다. 원자재와 함께 인플레이션의 선행지표 역할을 하는 중간재 물가도 지난달 전년 동월대비 10.8% 올랐다.

원재료 물가가 급등한 것은 국제유가 상승과 중국 및 중동지역의 건설용 수요가 증가하면서 원유 액화천연가스(LNG) 등 광산품(전년 동월대비 52.9%)과 고철 등 공산품(35.3%) 가격이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또 곡물 작황이 부진한 데다 바이오 연료용 수요가 늘면서 수입곡물을 중심으로 한 농림수산품(18.9%) 가격이 급등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원재료 물가 상승세는 최근에도 꺾일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실제 지난 20일 두바이유 현물가격은 배럴당 1.08달러 오른 92.69달러에 마감,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두바이유는 우리나라가 주로 수입하는 중동산 원유가격의 기준이다. 두바이유가 오르면 국내 수입물가나 원재료 물가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또 19개 주요 원자재 시세로 구성된 '로이터-제프리 CRB지수'도 최근 1년 새 35.8%나 오르며 지난 20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인플레 기대심리 확산

문제는 이 같은 원재료 물가 상승의 경우 통화당국으로선 마땅히 대처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원자재 대부분을 수입하는 우리 경제로선 원자재 값 급등의 충격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

결국 원재료 물가 상승은 시차를 두고 다른 물가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이미 각종 물가지표는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지난달 수입물가는 전년 동월대비 21.2% 상승해 9년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생산자물가는 3년2개월 만에 최고인 5.9%를 나타냈다.

서민들이 직접 체감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9%로 한국은행의 물가관리범위(2.5~3.5%)를 넘어선 상태다.

여기다 지난 1~2년간 국내 경기상승 효과가 뒤늦게 반영되고 있는 데다 시중 유동성이 증가하면서 물가를 들썩이게 만들고 있다. 지금과 같은 물가 상승세가 이어진다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조만간 4%를 넘을 가능성도 있다.

이성태 한은 총재가 지난 13일 콜금리 동결 직후 브리핑에서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의 확산을 걱정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물가는 방향성이 있기 때문에 한번 물가가 오르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자꾸 오를 것이란 불안감에 빠진다.

'식료품 사재기' 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확산되면 걷잡을 수 없다. 1980년대 초 미국에서도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확산된 때가 있었다. 당시 폴 볼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정책금리를 연 20%까지 끌어올리는 초강수를 둬야 했다.

한편 최근 물가불안으로 한은이 당분간 기준금리를 올리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으면서 21일 채권시장에서 채권금리가 일제히 급등(채권값 급락)했다. 3년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날보다 0.09%포인트 오른 연 5.12%,5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0.10%포인트 오른 연 5.21%에 거래를 마쳤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