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갤러리] 전기철 '위험한 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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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말을 건넬까 말까,그냥 나가는데 문을 미는 손이 떨린다.7호 쪽에서는 늘 성가시게 인사를 챙기는 관리인이 귀찮아서 3호 쪽으로 나간다.바람이 일다가 구름이 흐르다가 허공은 제멋대로다.나뭇가지들의 삿대질을 피해 주차된 차들 사이를 이리저리 돌아 아파트를 벗어나니 신호들이 파닥거리며 길을 막는다.눈치를 보다가 무단횡단을 하는데 갑자기 나타난 차가 욕설을 퍼붓는다.어젯밤 악몽이 와 있다.속으로 씨발,씨발 하며 지하철을 타러 내려가다가 무료 신문중에서 만화가 있는 걸 볼까 정보가 많은 걸 볼까 스포츠지를 볼까 하다가 노컷뉴스를 집어 든다.바스락거리는 뉴스 속을 헤매는데 출근하는 눈들이 같이 와 있다.하차 역을 지나칠까 봐 몸을 칼처럼 세워서 문 앞으로 다가간다.쏟아지는 눈,눈,눈들,정신없이 떠밀려 내린다.(…)
-전기철 '위험한 출근'부분
요즘 우리가 사는 방식이 이렇다.출근길만 해도 위험하기 짝이 없다.아파트 문을 열고 나가면서부터 '경계태세'에 들어가야 한다.피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다.기계적으로 인사를 주고받아야 하는 관리인,제멋대로 자라난 조경수 가지들,질주하는 차들,무차별 살포되는 무료신문 또는 전단지들,만원 지하철 속의 적의에 찬 눈들.회사에 도착하면 몸은 나른하고 옷은 후줄근해 진다.그런 상태로 종일 일한 후 다시 퇴근길의 위험으로 뛰어들어야 한다.거기서 끌어낼 수 있는 즐거움이나 의미는 무엇일까.있기는 있는 걸까.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