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취임식 참석 대구 '서문시장 아지매' 박종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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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되면 경제 살리겠다 '7월의 약속' 꼭 지켜주세요"
지난해 7월 한나라당 경선 유세차 대구 서문시장을 찾은 이명박 후보자는 시장 뒷골목에서 한 노점상을 만난다.
'장사가 잘 되느냐'는 질문에 이 노점상은 "먹고살기 힘들다.경제를 꼭 좀 살려달라"며 이 후보를 덥석 안고 눈물을 흘렸다.일정에 쫓겨 바쁜 이 후보자였지만 도저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이 노점상의 하소연을 20여분간이나 들으며 함께 눈시울을 적셨다.
이 후보는 "대통령이 되면 서민들이 마음 편히 살 수 있도록 경제를 꼭 살리겠다"는 약속을 한 후에야 그 자리를 떴다.
이 노점상이 25일 열리는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다.대구 서문시장 4지구 북쪽 골목에서 때밀이수건,빗,손톱깎이 등 각종 잡화를 파는 박종분씨(59ㆍ대구 남산4동)가 그 주인공.박씨는 당초 초청자 명단에 없었다.이 당선인 측은 이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박씨를 수소문해 뒤늦게 초청장을 보냈고 덕분에 박씨는 국내ㆍ외 인사 70명과 함께 단상에서 취임식을 지켜보는 영광을 안게 됐다.
박씨는 "사실 취임식에 초청돼도 하루 장사를 접고 갈 형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통령이 직접 초청했다는 말을 듣고 참석하기로 결정했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박씨는 "'나 같은 사람한테 왜?'하며 혹시 초청장이 잘못 전달됐을 수 있다는 생각에 주변에 알리지도 못했다"며 "나중에 언론을 통해 그 같은 사실이 밝혀지면서 갑자기 서문시장의 명사가 됐다"며 즐거워했다.
노점상연합회 부회장까지 맡고 있는 박씨는 "40년 가까이 노점을 하며 사남매를 키웠지만,지금처럼 장사가 안 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하루 종일 장사해도 손에 쥐는 돈은 겨우 몇 만원에 불과하다.그나마 자신은 형편이 나은 편이고 골목 안쪽에는 개점휴업인 상가가 수두룩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박씨는 남산 4동에 있는 14평 영구 임대아파트가 전 재산이지만 동네 통장을 13년이나 도맡아 하고 있을 정도로 이웃에 대한 봉사가 몸에 배었다.충남 예산이 고향인 그는 군산세관에 근무하던 대구 출신 남편을 만나 결혼했고,좀 더 잘 살아보겠다고 서문시장에서 생선장사를 시작했다.그러나 남편이 14년 전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면서 생활은 급격하게 악화됐다.가발용 머리카락 수집 등 온갖 궂은 일을 다했지만 남편 병원비를 내고 나면 끼니를 걱정할 때도 많았다.한 입이라로 줄이기 위해 세 딸은 산업체 학교로 보내야 했다.
하나뿐인 아들 홍모씨(39)는 서울대 체육교육과를 졸업하고 박사 학위까지 마쳤지만 모 대학에서 연구교수로 근무하며 아직 제대로 된 일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그는 아들의 피곤한 삶이 대학 다니는 동안 학비 한번 제대로 대주지 못한 자신의 탓이 아닌가 하는 죄책감에 안타까워 했다.
"이제 대통령이 되었으니 그때 한 약속을 꼭 지켜줬으면 합니다.반드시 경제를 살려서 국민들이 편히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대구=신경원 기자 shinkis@hankyung.com
지난해 7월 한나라당 경선 유세차 대구 서문시장을 찾은 이명박 후보자는 시장 뒷골목에서 한 노점상을 만난다.
'장사가 잘 되느냐'는 질문에 이 노점상은 "먹고살기 힘들다.경제를 꼭 좀 살려달라"며 이 후보를 덥석 안고 눈물을 흘렸다.일정에 쫓겨 바쁜 이 후보자였지만 도저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이 노점상의 하소연을 20여분간이나 들으며 함께 눈시울을 적셨다.
이 후보는 "대통령이 되면 서민들이 마음 편히 살 수 있도록 경제를 꼭 살리겠다"는 약속을 한 후에야 그 자리를 떴다.
이 노점상이 25일 열리는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다.대구 서문시장 4지구 북쪽 골목에서 때밀이수건,빗,손톱깎이 등 각종 잡화를 파는 박종분씨(59ㆍ대구 남산4동)가 그 주인공.박씨는 당초 초청자 명단에 없었다.이 당선인 측은 이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박씨를 수소문해 뒤늦게 초청장을 보냈고 덕분에 박씨는 국내ㆍ외 인사 70명과 함께 단상에서 취임식을 지켜보는 영광을 안게 됐다.
박씨는 "사실 취임식에 초청돼도 하루 장사를 접고 갈 형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통령이 직접 초청했다는 말을 듣고 참석하기로 결정했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박씨는 "'나 같은 사람한테 왜?'하며 혹시 초청장이 잘못 전달됐을 수 있다는 생각에 주변에 알리지도 못했다"며 "나중에 언론을 통해 그 같은 사실이 밝혀지면서 갑자기 서문시장의 명사가 됐다"며 즐거워했다.
노점상연합회 부회장까지 맡고 있는 박씨는 "40년 가까이 노점을 하며 사남매를 키웠지만,지금처럼 장사가 안 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하루 종일 장사해도 손에 쥐는 돈은 겨우 몇 만원에 불과하다.그나마 자신은 형편이 나은 편이고 골목 안쪽에는 개점휴업인 상가가 수두룩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박씨는 남산 4동에 있는 14평 영구 임대아파트가 전 재산이지만 동네 통장을 13년이나 도맡아 하고 있을 정도로 이웃에 대한 봉사가 몸에 배었다.충남 예산이 고향인 그는 군산세관에 근무하던 대구 출신 남편을 만나 결혼했고,좀 더 잘 살아보겠다고 서문시장에서 생선장사를 시작했다.그러나 남편이 14년 전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면서 생활은 급격하게 악화됐다.가발용 머리카락 수집 등 온갖 궂은 일을 다했지만 남편 병원비를 내고 나면 끼니를 걱정할 때도 많았다.한 입이라로 줄이기 위해 세 딸은 산업체 학교로 보내야 했다.
하나뿐인 아들 홍모씨(39)는 서울대 체육교육과를 졸업하고 박사 학위까지 마쳤지만 모 대학에서 연구교수로 근무하며 아직 제대로 된 일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그는 아들의 피곤한 삶이 대학 다니는 동안 학비 한번 제대로 대주지 못한 자신의 탓이 아닌가 하는 죄책감에 안타까워 했다.
"이제 대통령이 되었으니 그때 한 약속을 꼭 지켜줬으면 합니다.반드시 경제를 살려서 국민들이 편히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대구=신경원 기자 shi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