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수 사장의 LG필립스LCD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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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1년만에 '턴어라운드' 시킨 비결은…
"주위 사람들이 제가 최고경영자(CEO)가 되고 나서 성격이 많이 달라졌다고 하더군요."
권영수 LG필립스LCD(LPL) 사장(51)이 LG전자 최고재무책임자(CFO)에서 LPL의 CEO로 자리를 옮긴 지난해 1월 기자에게 한 말이다.CFO 시절 권 사장은 '깐깐한 상사'로 통했다.CFO 특유의 꼼꼼한 숫자 감각과 철두철미한 일처리를 부하 직원들에게 강하게 요구해 '권 대리'라는 별명으로 불렸을 정도다.
권 사장 부임 직전인 2006년에 9000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던 LPL 임직원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찔러도 피 한방울 안나올 것 같다'는 이미지로 알려진 탓에 강도 높은 인력 구조조정과 비용 절감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권 사장이 CEO로서 직원들에게 처음 던진 경영 키워드는 예상 밖으로 '배려'였다.임직원들은 "사람이 변한 것 아니냐"며 술렁거렸다.한편에서는 '당장 회사가 망할 판국에 한가한 얘기를 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왔다.하지만 취임 후 1년여가 지난 지금 그런 불만은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는다.그 사이 LPL은 1조5000억원의 흑자(2007년)를 내는 견실한 회사로 탈바꿈했다.
요즘 재계에서는 권 사장의 거침 없는 경영 행보가 화제다.'숫자에만 민감하고 숲을 볼 줄 모른다'는 CFO 출신 CEO에 대한 선입견을 일축하며 LPL의 현 상황에 꼭 맞는 체질 개선과 경영구조 혁신을 착착 진행하고 있어서다.특히 특유의 감성 경영과 적극적인 의사소통으로 '직원들을 알아서 뛰게 만드는' 리더십은 웬만한 전문경영인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CFO 출신이라 흔히 시야가 단기적이고 단편적일 것이라고 오해하지만 권 사장은 호흡이 긴 경영자입니다." 그를 가까이서 보좌하는 한 임원은 자신도 놀랐을 정도로 권 사장이 큰 그림을 그리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전했다.
'배려 경영'이 단적인 예다.권 사장은 위기에 빠졌던 LPL의 문제를 재무상황이나 LCD 시황이 아닌 조직문화에서 찾았다.과거 '만들면 팔리던' 시절에 갖게 된 공급자 위주의 사고와 책임 떠넘기기 문화가 가장 큰 위기 요인이라는 생각이었다.
꾸준한 배려 경영 덕분에 LPL을 바라보는 고객들의 시선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뻣뻣하기만 했던 LPL 직원들이 고객이 원하는 것을 먼저 알려고 애쓰고,문제 해결을 위해 부서 간의 벽을 깨는 모습을 고객들은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이는 LCD 시황 호조세와 함께 LPL의 매출 확대와 수익성 회복에 날개를 달아줬다.
배려 경영은 단순히 조직문화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권 사장이 추진하는 '비즈니스 트랜스포메이션(경영구조 변혁)'의 핵심 전략이 배려요,상생이다.LPL은 요즘 전후방 업체들과의 전방위 제휴를 통해 '개방형 수직 계열화'를 추진하고 있다.이 과정에서 권 사장은 LPL과 상대방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제시함으로써 냉정한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배려가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대만의 LCD 패널 업체인 한스타와의 전략적 제휴가 대표적인 예다.
그의 장기적 안목과 상생에 대한 철학,그리고 직원들과의 의사소통 능력은 지난해 8세대 투자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압축적으로 나타났다.당초 계획대로 노트북용 LCD를 생산하는 5.5세대 라인에 투자했다면 LPL은 당장 큰 돈을 벌었겠지만 업계는 공급 과잉에 허덕였을 것이고,LPL은 대형 LCD TV 시장을 영영 잃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회사 내에서 'LCD 업계를 모른다'는 반발의 목소리도 있었다.하지만 그는 "5.5세대 시장은 생산량 극대화와 아웃소싱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로 조직원들을 설득시켰고 이는 결국 지난해 경영실적으로 입증됐다.
이제 2년차에 접어든 새내기 CEO이지만 권 사장의 시선은 이미 선배 경영자들보다 더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그는 오는 29일 열릴 주주총회를 파티 형식으로 개최,한국판 오마하의 축제로 만들기로 했다.사외이사 구성도 획기적으로 바꿔 '거수기 이사회'를 '실용적 이사회'로 바꿔 나간다는 방침이다."대한민국에 안 되는 게 어디 있냐"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특유의 추진력과 관행에 얽매이지 않는 유연한 사고 없이는 불가능한 일들이다.
재계는 이런 권 사장에 대해 'CFO 출신으로서 놀라운 경영 실력'이라고 평가한다.하지만 그의 지인들은 사실 권 사장이 이미 'CEO 유전자'를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국제그룹 양정모 전 회장의 막내사위이기도 한 그는 직간접적으로 경영자의 DNA를 물려받았다는 것.'배려의 리더십'은 육사 출신인 아버지에게 배웠다.경기고와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후에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산업공학 석사를 땄을 만큼 '엔지니어 마인드'도 갖췄다.그는 여러모로 준비된 CEO였던 셈이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
권영수 LG필립스LCD(LPL) 사장(51)이 LG전자 최고재무책임자(CFO)에서 LPL의 CEO로 자리를 옮긴 지난해 1월 기자에게 한 말이다.CFO 시절 권 사장은 '깐깐한 상사'로 통했다.CFO 특유의 꼼꼼한 숫자 감각과 철두철미한 일처리를 부하 직원들에게 강하게 요구해 '권 대리'라는 별명으로 불렸을 정도다.
권 사장 부임 직전인 2006년에 9000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던 LPL 임직원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찔러도 피 한방울 안나올 것 같다'는 이미지로 알려진 탓에 강도 높은 인력 구조조정과 비용 절감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권 사장이 CEO로서 직원들에게 처음 던진 경영 키워드는 예상 밖으로 '배려'였다.임직원들은 "사람이 변한 것 아니냐"며 술렁거렸다.한편에서는 '당장 회사가 망할 판국에 한가한 얘기를 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왔다.하지만 취임 후 1년여가 지난 지금 그런 불만은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는다.그 사이 LPL은 1조5000억원의 흑자(2007년)를 내는 견실한 회사로 탈바꿈했다.
요즘 재계에서는 권 사장의 거침 없는 경영 행보가 화제다.'숫자에만 민감하고 숲을 볼 줄 모른다'는 CFO 출신 CEO에 대한 선입견을 일축하며 LPL의 현 상황에 꼭 맞는 체질 개선과 경영구조 혁신을 착착 진행하고 있어서다.특히 특유의 감성 경영과 적극적인 의사소통으로 '직원들을 알아서 뛰게 만드는' 리더십은 웬만한 전문경영인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CFO 출신이라 흔히 시야가 단기적이고 단편적일 것이라고 오해하지만 권 사장은 호흡이 긴 경영자입니다." 그를 가까이서 보좌하는 한 임원은 자신도 놀랐을 정도로 권 사장이 큰 그림을 그리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전했다.
'배려 경영'이 단적인 예다.권 사장은 위기에 빠졌던 LPL의 문제를 재무상황이나 LCD 시황이 아닌 조직문화에서 찾았다.과거 '만들면 팔리던' 시절에 갖게 된 공급자 위주의 사고와 책임 떠넘기기 문화가 가장 큰 위기 요인이라는 생각이었다.
꾸준한 배려 경영 덕분에 LPL을 바라보는 고객들의 시선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뻣뻣하기만 했던 LPL 직원들이 고객이 원하는 것을 먼저 알려고 애쓰고,문제 해결을 위해 부서 간의 벽을 깨는 모습을 고객들은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이는 LCD 시황 호조세와 함께 LPL의 매출 확대와 수익성 회복에 날개를 달아줬다.
배려 경영은 단순히 조직문화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권 사장이 추진하는 '비즈니스 트랜스포메이션(경영구조 변혁)'의 핵심 전략이 배려요,상생이다.LPL은 요즘 전후방 업체들과의 전방위 제휴를 통해 '개방형 수직 계열화'를 추진하고 있다.이 과정에서 권 사장은 LPL과 상대방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제시함으로써 냉정한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배려가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대만의 LCD 패널 업체인 한스타와의 전략적 제휴가 대표적인 예다.
그의 장기적 안목과 상생에 대한 철학,그리고 직원들과의 의사소통 능력은 지난해 8세대 투자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압축적으로 나타났다.당초 계획대로 노트북용 LCD를 생산하는 5.5세대 라인에 투자했다면 LPL은 당장 큰 돈을 벌었겠지만 업계는 공급 과잉에 허덕였을 것이고,LPL은 대형 LCD TV 시장을 영영 잃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회사 내에서 'LCD 업계를 모른다'는 반발의 목소리도 있었다.하지만 그는 "5.5세대 시장은 생산량 극대화와 아웃소싱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로 조직원들을 설득시켰고 이는 결국 지난해 경영실적으로 입증됐다.
이제 2년차에 접어든 새내기 CEO이지만 권 사장의 시선은 이미 선배 경영자들보다 더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그는 오는 29일 열릴 주주총회를 파티 형식으로 개최,한국판 오마하의 축제로 만들기로 했다.사외이사 구성도 획기적으로 바꿔 '거수기 이사회'를 '실용적 이사회'로 바꿔 나간다는 방침이다."대한민국에 안 되는 게 어디 있냐"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특유의 추진력과 관행에 얽매이지 않는 유연한 사고 없이는 불가능한 일들이다.
재계는 이런 권 사장에 대해 'CFO 출신으로서 놀라운 경영 실력'이라고 평가한다.하지만 그의 지인들은 사실 권 사장이 이미 'CEO 유전자'를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국제그룹 양정모 전 회장의 막내사위이기도 한 그는 직간접적으로 경영자의 DNA를 물려받았다는 것.'배려의 리더십'은 육사 출신인 아버지에게 배웠다.경기고와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후에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산업공학 석사를 땄을 만큼 '엔지니어 마인드'도 갖췄다.그는 여러모로 준비된 CEO였던 셈이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