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교수평가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피터 드러커는 "교육자는 다른 전통적인 직업인들과는 다르다"고 말한다.누가 평가를 하고,언제 평가를 할 것인가 하는 기준이 모호하다는 얘기다."좋은 평가란 대체 무엇을 가지고 하는 것이냐"하는 의문도 제기한다.그는 이어 "교육계만큼 범용(凡庸)과 무능력이 관용으로 받아들여진 직업이 지금껏 없었다"며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이 아직껏 나오지 않고 있다"고 아쉬워 한다.
사실 교육자를 계량적으로 평가하기는 여간 어렵지 않다.지식교육도 그렇지만 더구나 덕성교육은 측량할 도구가 마땅치 않아서다.최근에는 아주 단순하게 '학생들이 즐겁게 배우고 있으면 좋은 선생님'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도 하다."교육의 진정한 목표는 학생의 내적 독립과 개성,즉 성장과 완전성을 키우는 데 있다"는 에리히 프롬의 교육관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듯하다.
요즘 교수평가의 실명공개를 둘러싸고 논란이 한창이다.동국대가 고객인 '학생만족' 차원에서 전체 교수들의 강의점수를 인터넷에 공개키로 했기 때문이다.교수에게는 자극을 주고,학생에게는 수업의 선택권을 보장하겠다는 취지에서 특별한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찬성하는 측에서는 강의의 질이 크게 향상될 것으로 보는 반면,반대하는 측에서는 인기영합에 흐를 개연성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아직도 대학 갬퍼스에는 수년 동안 강의 내용과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교수들이 많다고 한다.심지어는 농담까지도 변하지 않는다고 학생들은 꼬집는다.정치판을 기웃거리고,연구비를 따내기 위해 로비를 하는 볼썽사나운 일들도 종종 빈축을 사곤 한다.
교수평가는 외국 대학들도 하는 것이어서 그 자체가 시빗거리가 될 수는 없다.다만 교수를 평가하는 문항이 천편일률적이어서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교수평가의 실명공개를 논의하기에 앞서 과목의 특성에 맞는 설문이 개발되어야 그나마 평가기준이 객관성을 띠지 않을까 싶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
사실 교육자를 계량적으로 평가하기는 여간 어렵지 않다.지식교육도 그렇지만 더구나 덕성교육은 측량할 도구가 마땅치 않아서다.최근에는 아주 단순하게 '학생들이 즐겁게 배우고 있으면 좋은 선생님'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도 하다."교육의 진정한 목표는 학생의 내적 독립과 개성,즉 성장과 완전성을 키우는 데 있다"는 에리히 프롬의 교육관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듯하다.
요즘 교수평가의 실명공개를 둘러싸고 논란이 한창이다.동국대가 고객인 '학생만족' 차원에서 전체 교수들의 강의점수를 인터넷에 공개키로 했기 때문이다.교수에게는 자극을 주고,학생에게는 수업의 선택권을 보장하겠다는 취지에서 특별한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찬성하는 측에서는 강의의 질이 크게 향상될 것으로 보는 반면,반대하는 측에서는 인기영합에 흐를 개연성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아직도 대학 갬퍼스에는 수년 동안 강의 내용과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교수들이 많다고 한다.심지어는 농담까지도 변하지 않는다고 학생들은 꼬집는다.정치판을 기웃거리고,연구비를 따내기 위해 로비를 하는 볼썽사나운 일들도 종종 빈축을 사곤 한다.
교수평가는 외국 대학들도 하는 것이어서 그 자체가 시빗거리가 될 수는 없다.다만 교수를 평가하는 문항이 천편일률적이어서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교수평가의 실명공개를 논의하기에 앞서 과목의 특성에 맞는 설문이 개발되어야 그나마 평가기준이 객관성을 띠지 않을까 싶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