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호 < 한양대 교수·경영학 >

연초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은 '글로벌 리스크 2008'을 통해 세계가 체계적 재무위험,세계물류체계(글로벌 공급사슬)와 관련한 위험,식량위기,에너지위험 등 4가지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특히 체계적 재무위험,특히 파생상품시장의 위험이 가장 심각하다고 경고한 바 있다.

파생상품의 역사는 오래됐지만 지난 15년 사이에 급증하면서 세계적 이슈가 돼오다가 이제는 세계최대의 위험으로 떠올랐다.작년 말 현재 세계 GDP는 50조달러 미만이나 세계 파생상품시장은 516조달러로 실물경제의 10배가 넘는다.

현재 파생상품시장이 가장 큰 곳은 미국(CME Group)과 유럽(Eurex)이며 파생상품 거래 건수로는 한국(KOSPI)이 최대다. 미국은 세계 파생상품시장의 50%가 넘는 283조달러로 GDP 11조달러의 25배나 되는 파생상품 대국이다.그래서 현재 체계적 재무위험이 가장 큰 진원지는 절대적으로 미국이며 유럽과 한국도 위험지역으로 지목되고 있다.

미국은 최첨단 기술보유국,군사대국,교육강국이지만 동시에 세계 최대의 채무국,세계최대의 파생상품 대국이다.

1970년대 후반에 일본,서독과 후발 신흥국가들의 추격으로 1980년대 초 제조업이 일거에 붕괴되면서 세계 최대 채무국으로 바뀐 미국에서는 제조업 대신에 수입물품에 고수익 창출을 꾀하는 유통업,서비스업,금융업이 주종산업이 되었다. 미국 금융업은 1971년 고정환율제 붕괴 이후 계속 증가하는 위험을 사업모델로 하는 각종 파생상품들을 재무공학이란 이름으로 개발ㆍ유통시키면서 성장해 왔다. 파생상품은 '나의 위험을 더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 더 큰 수익을 기대하는 상대방에게 전가하는 방식'의 제로섬(zero-sum) 거래다.

파생상품시장은 1990년대 들어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1994년 이래 7건의 파산사고가 났는데 그 규모가 유례없이 컸다.더 심각한 것은 이들이 더 큰 사건의 징후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실물경제로부터 파생상품 시장으로 돈이 들어가면 절대로 빠져 나오질 않는 블랙홀로 작용하는 파생상품시장의 98%가 상위 7개 미국 금융기관에 집중되어 있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초강력 핵폭탄이라는 것이 세계경제포럼의 경고이다.

파생상품시장에서 아주 작은 부분인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 담보채권) 사고에도 미국 제1위 금융사인 씨티그룹과 제1위 증권사인 메릴린치가 독자적 해결은커녕 아랍 에미리트와 싱가포르의 지원으로 겨우 모면한 실례는 세계금융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일지라도 실물경제,특히 제조업 없는 금융산업은 다만 거품산업임을 잘 웅변해준다.

미국은 최근 들어 막대한 무역적자와 경상적자를 커버하기 우해 매년 1조달러 이상을 찍어내고 있다.그래서 지금 달러화 하락과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 금,부동산,자원,곡물,석유값 등이 치솟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업이 과연 우리 경제의 제2도약을 담보할 전략산업이라 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우리의 경우 금융업이 아랍에미리트가 금융허브가 된 여건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금융업에 대한 규제완화와 전략적 지원을 추진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세계 최대의 거래 건수를 기록하고 있는 국내 선물(파생)시장은 더욱 활활 타오를 것이다.하지만 역으로 제로섬인 선물시장의 활황이 국민경제에 보탬은커녕 활활 타는 그만큼 우리경제에 큰 부담을 줄 수도 있다.그리고 계속되는 미국 달러화 증발과 언젠가 발생할지도 모를 미국 파생상품시장의 폭발로 미국발 세계대공황 쓰나미라도 덮친다면 우리는 그만큼 더 빨리 함몰될 수도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새 정부는 경제 제2도약과 더불어 언제 닥칠지 모르는 글로벌 파국에 대한 세계경제포럼의 경고메시지를 경청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