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26일 평양 공연은 딱딱하게 굳어 있던 북한 관객들의 감성을 뜨겁게 일깨웠다.공연이 끝나자 관객들은 일제히 기립박수를 치며 자리를 떠날 줄 몰랐고 연주자들 또한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객석 여기저기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박수가 너무 길어지자 연주자들이 오히려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평양 대동강구역 청류동에 자리 잡은 1500석 규모의 동평양대극장에서 오후 6시부터 1시간30분 동안 계속된 이날 공연은 남북한을 비롯한 전 세계에 TV로 생중계됐다.외신들이 치열한 취재경쟁을 벌인 가운데 AFP통신은 '북한은 충격을 초대했다'는 기사를 타전했다.하지만 깜짝 등장할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달리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로린 마젤이 이끄는 뉴욕필은 좌우로 북한과 미국의 국기가 걸린 공연장에서 두 나라 국가를 연이어 연주하면서 무대를 열었다.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긴장감이 감돌았다.연주자들은 모두 일어서서 연주하는 예의를 보였고,관객들도 기립한 채 감상했다.

본공연은 바그너의 '로엔그린' 3막 전주곡으로 막이 올랐다.화합의 미래로 나서길 바라는 염원이 담긴 곡이어서 첫 연주로 선정됐다.그러나 화려한 관현악 연주에도 불구하고 곡이 끝날 때까지 관객들의 표정은 풀어지지 않았다.

긴장된 분위기를 누그러뜨린 것은 음악이 아닌,로린 마젤의 서툰 한국말이었다.마젤이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을 소개하면서는 "좋은 시간 되세요"라고 말하자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굳어있던 관객들의 자세가 다소 풀어지며 옆사람과 귀엣말을 나누기도 했다.

민족주의적 색채가 짙은 신세계 교향곡이 흘러나오면서 관객들은 본격적으로 음악에 빠져들었다.마젤의 현란한 몸짓과 신세계 교향곡 1악장의 활기찬 선율이 어우러져 분위기가 달아올랐고,관객들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박자를 맞췄다.

2악장에서 잉글리시 호른의 라르고 선율이 흘러나오자 객석의 분위기는 숙연해지기 시작했다.아름다우면서도 깊은 음색에 출입구를 지키고 있던 아가씨들도 고개를 옆으로 기울인 채 연주를 감상했다.

마지막곡 거슈윈의 '파리의 미국인'은 숙연한 공연장을 다시 경쾌하게 이끌어갔다.마젤은 이 곡을 소개하면서 "앞으로 언젠가 ' 평양의 미국인'이라는 노래가 나올지도 모른다"고 말하자 객석에서 폭소가 터져나왔다.

연주가 끝나자 관객들은 뒤에서부터 차례로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보통 앞좌석의 열성 관객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뒷좌석 관객들이 따라 일어나는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신세계 교향곡'과 '파리의 미국인' 또한 미국의 '정신'을 상징하는 클래식 곡으로 이번 무대에서 연주곡으로 선정된 의미가 깊다.

관객들의 환호가 이어지자 뉴욕필은 비제의 '아를르의 여인',번스타인의 '캔디드 서곡' 등 앙코르곡으로 화답했다.마지막 앙코르곡으로 북한의 작곡가 최성환씨가 만든 관현악 '아리랑'이 연주되자 관객들은 다시 서정적 선율에 빠져들었다.뉴욕필은 27일 오전 평양 모란봉극장에서 북한 조선국립교향악단과 실내악 협연을 한 후 한국으로 들어와 28일 오후 1시30분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박신영 기자/연합뉴스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