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필의 공연이 열린 26일 평양 동평양대극장에는 리근 북한 외무성 미국 국장과 윌리엄 페리 전 미 국방장관이 나란히 자리에 앉았다.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과 한성렬 전 유엔 주재 북한 차석대사도 방북단의 일원인 유리 김 미 국무부 북한 과장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평양 공연은 우리가 북한과 잘 지낼 준비가 돼 있음을 북측에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혀 미국 내 우호적 분위기를 전했다.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미국은 북한과의 갈등을 조장하기보다는 미국과 그 외 6자 회담 참여국가들과의 강한 유대관계를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스 장관은 한국에 이어 중국과 일본을 연쇄 방문,북한의 비핵화 문제를 논의할 계획이다.힐 차관보는 북핵 문제해결을 위한 한ㆍ미ㆍ일 3국 회의를 재개할 것이라고 밝히는 등 외교적 노력이 전개될 것임을 강조했다.

북측도 이번 공연을 통해 미국과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겠다는 뜻을 표명했다.송석환 북한 문화성 부상은 "뉴욕필의 방문이 북ㆍ미 양국 교류에 진전을 가져오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중국과 일본 등 관련국들도 이번 공연이 단순히 문화이벤트를 넘어 북ㆍ미 간 해빙무드를 이끌어 낼 계기가 될지 주목하고 있다.중국과 미국의 핑퐁외교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1973년 필라델피아 필하모닉의 중국 방문과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 때문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북ㆍ미 관계가 6자회담을 축으로 진전되고 있는 가운데 이뤄진 이번 공연은 양자가 서로 상대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이날 공연이 문화이벤트 이상의 결과를 끌어내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공연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북한이 핵포기라는 전략적 결단을 내리지 못했음을 보여준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국제 언론의 시각도 엇갈린다.

뉴욕타임스는 종전 협상을 준비 중인 화해 무드의 흐름에서 이번 음악회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나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공연은 북한의 선전용"이라며 평가절하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