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전자 왕국'을 되찾겠다며 회심의 반격을 노리고 있는 일본 전자업체들.'열도 내 수직계열화'로 불리는 업계 재편과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하고 있는 이들이 '타도 삼성'의 원년으로 삼은 시점은 2010년이다.

최근 소니가 투자하기로 한 샤프의 10세대 LCD 공장은 2009년 3분기 공사를 마무리하고 2010년부터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간다.올 가을 파나소닉으로 이름을 바꿀 마쓰시타가 8세대 LCD패널을 쏟아내기 시작할 시점도 2010년.

같은 해 도시바는 2개의 낸드플래시 메모리 공장을 신설,2001년 삼성전자에 빼앗긴 낸드플래시 1위 자리를 되찾겠다고 벼르고 있다.그래서 2010년은 제2차 한ㆍ일 전자전(戰)에서 첫 전면전이 벌어지는 해다.

◆소니ㆍ샤프 연합군,삼성ㆍLPL 턱밑까지 추격

2010년 이후에도 여러번 크고 작은 전투가 벌어지겠지만 첫 전면전에서 승리하는 쪽이 세계 시장을 차지하게 될 공산이 크다.승패가 분명하게 드러날 해는 2012년께.앞으로 5년 안에 한국 전자업체들이 업계 선두 자리를 지키느냐,2~3류 업체로 전락하고 마느냐가 판가름난다는 얘기다.

전의(戰意)를 불태우고 있는 일본 업체들의 기세로 볼 때 2010년의 전면전은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이 될 전망이다.우선 소니와 샤프의 합작으로 전열을 가다듬은 일본 LCD패널 업체들은 2010년이 되면 생산능력면에서 삼성전자,LG필립스LCD 등 한국업체들을 바짝 따라붙게 된다.특히 50인치 이상 대형 TV에 들어가는 8세대 이후 패널 시장에서는 일본 업체들의 우위가 예상된다.샤프와 마쓰시타가 일본 내의 든든한 우군들과 손잡고 대대적인 투자에 들어갔기 때문이다.7세대(40인치대)에서 한국에 밀린 일본업체들은 이후 시장은 반드시 선점한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패널의 경쟁력이 곧바로 TV 완제품의 경쟁력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삼성전자와 소니가 세계 TV 시장에서 1,2위를 차지한 건 2004년 LCD패널 제조 합작사인 S-LCD를 설립,패널을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日 TV업체,실지회복 안감힘

소니 히타치 도시바 캐논 등 일본 내 TV 메이커들은 샤프와 마쓰시타에 과감히 패널 제조를 맡긴 채 앞으로는 디자인과 브랜드 마케팅에 투자를 집중,세계 시장을 공략할 태세다.

특히 PDP 시장 세계 1위인 마쓰시타는 파나소닉의 강력한 브랜드력을 바탕으로 LCD TV 시장을 빠르게 잠식해올 가능성이 크다.LCD TV 세계 3위인 샤프도 패널은 일본에서 생산하고,북미(멕시코) 유럽(폴란드,스페인) 동남아(말레이시아) 중국(난징) 등에서 TV 조립을 맡는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해 삼성을 따라잡겠다는 복안이다.

물론 일본 업체들의 계획이 모두 성공할 가능성은 적다.하지만 삼성과 LG의 강력한 경쟁자가 현재에 비해 훨씬 더 많아질 것임엔 틀림없다.남용 LG전자 부회장이 강조하듯 "향후 TV시장에서는 빅3만 살아남는다"면 그 안에 삼성과 LG가 반드시 포함되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얘기다.빠르게 한국과 일본을 쫓아오고 있는 중국 업체들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낸드플래시 등 반도체 공세도 강화

반도체 시장에서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특히 낸드플래시 원천기술을 보유하며 1990년대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주름잡았던 도시바의 반격은 무서울 정도다.도시바는 최근 LCD패널 사업과 HD DVD 사업을 과감히 포기하고 반도체에 집중 투자키로 했다.이를 위해 옛 사옥까지 팔았다.2009년까지 무려 1조8000억엔(15조원)을 투자,2개의 낸드플래시 공장을 짓기로 했다.

특히 삼성을 뒤쫓아오기 바쁜 다른 업체들과 달리 도시바는 이미 40나노 공정을 도입했을 정도로 기술력이 좋다.

게다가 도시바는 삼성이 향후 먹거리로 육성하고 있는 비메모리반도체(시스템 LSI) 사업도 소니로부터 900억엔에 인수했다.소니의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3 등 안정적인 수요처도 이미 확보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2010년 세계 전자업계의 판세는 한국이 주도하고 있는 지금과는 분명히 다른 양상일 것"이라며 "불과 2년 후 벌어질 한ㆍ일 전면전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지금부터 전략을 짜서 당장 실행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