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말 사실상 중단됐던 한ㆍ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재개 얘기가 나오고 있다. 오는 4월 이명박 대통령의 방일 때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협의하기로 한ㆍ일 정상이 합의했다는 것이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가져 온 것일까. 한ㆍ일 관계의 축이 경제로 옮겨가야 한다는 상호인식이 작용했다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협상 중단 당시 일본은 산업구조 불균형 시정을 위한 한국 측의 협력 요구에 소극적이었고,농산물 시장개방도 양보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한국으로선 대일역조 심화 우려 속에서 일본의 리더십 결여,신축적이지 못한 협상 태도 등에 실망했었다.

그럼에도 일본에서 FTA 협상을 빨리 재개했으면 좋겠다(마치무라 노부다카 관방장관)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 문화로 미뤄 사전조율없이 이런 발언이 나왔다고는 보기 어렵다. 여기서 한 가지 설득력 있는 요인으로 등장하는 것이 한·미 FTA 협상 타결이다. 일본으로선 한국보다 더 우선적인 FTA 추진 대상국들이 있었겠지만 한ㆍ미 FTA 협상 타결,또 그 때문에 중국이 한국과 FTA를 서두르는 상황이라는 시나리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것이 동북아 경제,세계경제에 미칠 파장을 일본으로서는 가정해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ㆍ중 FTA 문제도 마찬가지다. 오는 5월 이 대통령의 방중 때 한ㆍ중 FTA 협상 개시가 논의될 것이란 얘기가 나오고 있다. 중국 역시 한ㆍ미 FTA 협상 타결 이후 한ㆍ중 FTA 추진의사를 보다 적극적으로 나타낸 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원자바오 총리는 한ㆍ미 FTA 협상 타결 직후 이런 의사를 직접적으로 피력한 적이 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한ㆍEU FTA 협상도 한ㆍ미 FTA 협상 타결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고 보면 한ㆍ미 FTA 협상 타결은 우리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다목적 카드가 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정작 한ㆍ미 FTA는 협상만 타결됐을 뿐 국회에서의 비준은 도무지 진전이 없다. 이대로 가면 오는 4월 중 이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국회 비준을 토대로 미 의회에서 한ㆍ미 FTA 비준을 당당히 촉구하는 모습을 보기는 틀린 것 같다.

이 모든 것을 정권 교체기 탓으로 돌릴 수만도 없다. 다른 나라에서는 중대한 사안을 정치적으로 매듭짓는 데는 오히려 그런 때가 더 좋다고도 하는데 우리는 부담을 떠 안고 가는 정치적 결단을 찾아보기 어렵다.

통상은 경제와 정치를 더한 것이다. 지금 우리의 통상은 정치에 완전히 막혀 있다. 결국은 정치가 문제인 것이다. 한ㆍ일 FTA 협상이 재개되면 우리는 부품ㆍ소재 등 중소기업 문제에서 돌파구를 찾아내야 한다. 한ㆍ중 FTA의 경우는 농산물이 그렇다. 경제적 측면에서 균형점을 찾아 협상이 타결돼도 중소기업,농산물의 특성상 이 역시 정치 문제로 귀착될 것은 너무도 뻔하다. 협상타결 이후가 오히려 더 문제인 것이다.

이런 비생산성,비효율성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통상이 우리의 생존전략이라면 누가 집권을 하든 이런 사안에 대해서는 어떤 정치적 규범을 정립할 때도 됐다. FTA의 경제학이 문제가 아니라 FTA의 정치학에서 선진화를 이루는 것,FTA를 추진한 지 10년째인 우리 앞에 놓인 과제다.

안현실 논설위원ㆍ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