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결하다.군더더기라곤 없다.먹의 농담(濃淡)만으로 이뤄진 화폭엔 그러나 온갖 모습과 이야기가 있다.선과 점이 끊어질 듯 이어진 그림은 수많은 사람들이 손에 손을 맞잡은 채 춤추는 듯하는가 하면 서로의 어깨를 감싸안고 격려하는 듯 혹은 두 손을 높이 쳐든 채 만세를 부르는 듯하다.

정중동(靜中動),곧 조용한 가운데 살아 움직이고 질서 속에 자유와 생명의 환희가 가득하다.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열린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장에 걸린 현수막 그림은 흑백의 수묵화(水墨畵)가 보여줄 수 있는 함축적이고 다의적인 아름다움을 국내외에 널리 알렸다.

취임식장 단상 뒤 배경은 산정(山丁) 서세옥 화백(79)의 수묵화 '춤추는 사람들'이었다.산정은 이 시대 마지막 문인화가로 불리는 한국화의 대가다.공식적으로 화단에 나온 게 1949년(제1회 국전 국무총리상)이니까 올해로 화력(畵歷)만 60년이 됐다.그동안 그는 한국화의 정수인 수묵을 통해 회화의 모든 가능성에 도전했다.

80년대 들어 서양화 바람이 거세지면서 한국화 역시 수묵보다 채색으로 기울 때도 그는 꿈쩍도 하지 않고 수묵에 천착했다. 또 대상을 자연에서 인간으로 확장시키고 공동체적인 삶 및 그 근간인 조화와 통일에 주목했다.'춤추는 사람들'을 비롯한 '사람들' 연작은 그같은 노력의 결과다.

수묵화는 불필요한 모든 것을 배제한다.붓의 움직임 하나로 형상은 물론 정신까지 나타낸다.거기엔 서양화에서 가능한 덧칠이나 가공이 용납되지 않는다.'춤추는 사람들'의 활력과 생동감은 덧바르고 지울 수 있는 서양화에서는 느끼기 힘든 것이다.그 기운은 다름아닌 한국인의 정신이다.

새 대통령의 취임식장에 맑고 힘찬 우리의 수묵화가 걸린 건 실로 반갑다.이 일을 계기로 오랫동안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해온 한국화,특히 수묵화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는 건 물론 우리 문화계 전반에 반듯하고 올곧은 한국 문화의 정신과 본질을 되찾자는 바람이 세차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