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서 송사(宋史)에 '의인불용 용인불의(疑人不用 用人不疑)'라는 말이 나온다.의심 나는 사람은 쓰지 말고 쓴 사람은 의심하지 말라는 뜻이다.

고(故) 이병철 삼성 회장은 이 말을 인사 철학으로 삼고 실천하면서 회사를 세계적 기업의 반열에 올려놓았다.사람을 잘 골라 일을 맡긴 인재 경영이 성공의 밑거름이었다는 이야기다.

새 정부 출범이 순조롭지 못하다.각료 내정자들에 대해 각종 의혹이 불거지면서 내각 구성이 난항을 겪고 있는 까닭이다.이런 저런 이유로 자진 사퇴한 사람만도 벌써 세 명에 이른다.

장관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끝났지만 모두 임명장을 받을 수 있을지 좀 더 지켜 봐야 할 형편이고 한 차례 연기돼 오늘 열리는 국무총리 인준 표결 또한 낙관을 불허한다.

제기된 문제는 가지가지다.부동산 투기다,위장 전입이다,병역 특혜다,이중 국적이다,논문 표절이다 하면서 온갖 것들이 등장한다.이들이 각료 내정자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라면 전혀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재테크 차원에서 한 일이고,자식 사랑에서 비롯된 일이며,남들도 다 하는 일이라는 식의 변명이 통할 수도 있을 것이다.하지만 나라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장관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은 나름대로 충분한 설득력을 갖는다.실용주의를 내세우며 일하는 정부가 되겠다고 자처하는 새 정부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도 정도 나름이다.노블레스 오블리주까지는 요구하지 않더라도 넘어서는 곤란한 선이 있는 법이다.물론 대통령과 그 참모들 또한 지금 불거진 문제들을 모두 알면서도 인선(人選)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인사 검증 시스템이다.관계 기관에서 문서 몇 장만 들춰 보면 간단히 알 수 있는 사안들조차 걸러지지 않은 것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한두 사람의 경우만 그런 게 아니니 인사 검증 시스템 자체가 부재(不在)하다는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앞으로 차관급을 비롯한 고위 공무원 인사가 계속될 것이고 보면 차제에 인사 검증 시스템을 전면 재검토해 대폭적인 보완이 있어야 한다.

인력 풀이 너무 협소한 것은 아닌지도 따져 봐야 할 과제다.일을 잘하면서도 도덕적 결함이 없는 인재는 세상에 널려 있다고 본다.그런데도 굳이 흠결이 있는 사람을 등용하려 든다면 전 정권과 마찬가지로 코드 인사라는 비난을 듣게 될지 모른다.

유비가 삼고초려(三顧草廬)로 제갈량을 등용해 촉나라를 일으킨 사실이 시사하듯 나라를 부흥시킬 동량을 발굴하는 일에는 힘을 아껴선 안 될 것이다.

이번 인사 파문은 처음이니까 있을 수 있는 일쯤으로 치자.초반에 실수하는 것이 나중에 하는 것보다 낫다고 관대히 생각할 수도 있겠다.하지만 이런 시행착오는 되풀이돼선 안 된다.

대통령의 성공이 곧 국민의 성공이다.그러기 위해선 체계적 인사시스템을 갖추고 사람 뽑는 일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용인불의는 의인불용이 전제돼야 가능하다.

이봉구 논설위원 b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