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직후의 일이다.나라 망한 충격과 절망에서 그나마 정신을 추스리게 됐을 무렵 우리 사회에는 '신바람 나는 직장 만들기''직장인 기 살리기' 운동이 대대적으로 벌어졌다.기업과 언론이 앞장선 이 캠페인은 거덜난 나라경제마냥 심리적으로 위축돼 있던 기업과 시민에게 '다시 뛰자'는 메시지를 심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는 '신바람''신명'이라는 한국인의 정서를 정조준한 대박 카피의 공이 컸다.이 카피는 '멍석만 깔아주면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 없는 엄청난 에너지를 분출하는' 우리의 기질에 불을 지폈고,이런 잠재된 에너지의 폭발력을 타고 기업과 사회는 빠른 시간에 정상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굿판을 깔아줌으로써 조직의 가능성을 극대화해보자는 제안은 최근 조직관리의 주된 테마다.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에 재직 중인 린다 그래튼 교수의 최근작 '핫스팟'(조성숙 옮김,21세기북스) 역시 그렇다.인적자원관리(HR) 전문인 그래튼 교수는 1995년부터 10여년간 노키아 도요타 브리티시페트롤륨(BP) 같은 일등기업과 화제의 기업들을 연구하면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그것은 잘나가는 기업은 구성원의 잠재된 에너지에 불을 지피는 마법 프로그램을 하나씩 지니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튼 교수는 '구성원의 기가 살아있는가' 여부를 기준으로 조직을 두 가지로 나눈다.그들의 에너지가 발산되지 못하고 웅크려 있는 조직은 '식었다'는 의미에서 '얼음지대(Big Freeze)'인 반면 잠재된 에너지에 불을 지피고 그들의 상상력과 열정을 마음껏 발산하는 조직은 '핫스팟(Hot Spot)'이다.

얼음지대에서는 유능한 직원일수록 회사를 떠난다.잠재력을 발산시킬 계기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핫스팟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협업과정에서 긍정적인 에너지가 생겨나며 개인과 조직은 기쁨과 가치를 공유한다.새로운 아이디어와 비전이 펄떡이며,몰입과 열정의 분위기가 자연스레 형성된다.이런 시너지의 연쇄반응,이것은 곧 기업과 조직의 생존 열쇠가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핫스팟에 불을 지필 것인가.저자는 △협력적 사고방식 △경계해제 △점화 목적이라는 세 요소를 활성화하라고 강조한다.언뜻 와닿지 않는 용어지만 간단하게 조직 내 협업,조직 간의 커뮤니케이션,가치목표 정도로 이해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사무실 내의 협력 분위기는 시너지의 1차 조건이고,타부서와의 협업은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수용하는 과정에서 혁신으로 이어진다.공통된 가치와 목표는 분출되는 에너지의 방향성을 제어한다.리더가 할 일이란 각 요소가 활발히 움직이도록 온도를 유지해주고 가치체계를 살린 고유의 조직문화를 만들어나가는 것으로 족하다.이 책에서 저자가 누누이 강조하는 것은 '오직 관계를 통해서만 잠재력이 개발되고 조직의 가치가 창조된다'는 것.뒤집어 말하면 구성원 개개인이 자기 발전에만 관심을 가진 조직은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책표지의 '조직의 숨은 G-스팟을 찾아라'는 사실 핫스팟과 무관하지만 책의 주제를 잘 살린 재치 넘친 오식(誤植)이다.308쪽,1만5000원.

우종근 편집위원 rgbac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