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우 < 소설가 >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새로운 시대가 막을 올렸다.새로운 대통령,새로운 여당,새로운 정부의 출범에 대해 국민은 많은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새로운 시대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이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지나간 시대에 대한 실망과 좌절감이 그만큼 컸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정부의 공과(功過)야 역사 속에서 절로 규명이 되겠지만 참여정부와 국민의 소원했던 관계를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불통'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을 도리가 없다.정치의 궁극이 소통이라는 걸 염두에 둔다면 불통은 당연히 오만과 편견의 산물일 수밖에 없을 터이다.

새로운 정부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은 소통에 대한 염원을 반영하는 것이다.소통이란 높은 경제성장과 물질적인 풍요를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는 게 결코 아니다.진정한 정치적 가치가 참으로 국민을 위하는 일이라는 걸 정치인들이 실천적으로 보여줄 때 비로소 국민은 나라의 주인으로서 정치의 주체들과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그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이 나라에서 정치하는 사람들의 뇌리에는 대단히 그릇된 고정관념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국민에게 선택당한 게 아니라 자신이 잘 나서 그 자리를 얻게 됐다고 판단하는 심각한 망상이 곧 그것이다.

지난 정부가 불통의 늪에 빠져버린 이유를 새로운 정부는 분명하게 되새겨야 할 것이다.핵심은 지극히 간단명료하지만 실천하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정치를 행하는 사람들의 의식주체인 '나'가 모든 문제의 근원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나를 버리면 소통이 이뤄지고,나를 내세우면 불통이 시작된다.그것이 문제의 핵심이다.과학에서 말하는 바,'나'라는 자아는 일종의 망상이다.시시각각 생각이 변하는 게 인간인데 과연 어느 순간의 나를 진정한 나로 내세울 수 있겠는가.그럼에도 불구하고 욕망의 주체인 인간은 '내가 누군데!'라는 터무니없는 망상으로부터 좀체 벗어나지 못한다.

나라는 망상자아의 가장 큰 특징은 극단성이다.음극과 양극으로 말하자면 망상자아는 항상 음극에 서서 양극을 시기하고 질시하고 원망한다.그러면서 죽는 날까지 양극을 지향한다.백억원대 재산가는 천억원대 재산가가 부러워 잠 못 이루고,부장은 국장 때문에 잠 못 이루고,사장은 회장이 되지 못해 안달하게 되는 것이다.어째서 성현들이 더하지도 덜하지도 말고 오직 중용의 도를 지키며 살라고 강조했는지 21세기에 그들의 가르침이 더욱 큰 울림으로 되살아난다.

일찍이 노자는 도덕경에서 다섯 가지 색깔로 사람의 눈이 멀게 되고,다섯 가지 음으로 사람의 귀가 멀게 되고,다섯 가지 맛으로 사람의 입맛이 고약해진다고 하였다.그래서 성현은 배(腹)를 위하고 눈(目)을 위하지 않는다고 했다.뿐만 아니라 내 몸 바쳐 세상을 귀히 여기는 사람이 가히 세상을 맡을 수 있고,내 몸 바쳐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 가히 세상을 떠맡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나를 버리는 일,다시 말해 망상자아에서 벗어나 진정한 가치에 기여할 줄 아는 사람이 세상에 이바지할 수 있는 인재임을 갈파한 것이다.

21세기의 정치는 완전한 소통을 꿈꾸어야 한다.진정한 소통을 지향하지 않으면 국민은 언제든 등을 돌릴 준비가 되어 있고,스스로 불통의 답답함에 시달림으로써 새로운 선택을 예비하는 소통의 주체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정말 무서운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나를 버리지 않고 나를 내세우는 정치인,앞으로는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나'를 버리고 새로운 소통의 길을 열어가는 일,그것이 곧 21세기의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헌신과 이바지의 덕목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