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위치한 포스코건설 송도사업본부 3층 조용경 부사장(57)의 방에 들어서면 예쁜 꽃 사진이 담긴 달력이 눈길을 끈다.이 달력에는 한라산에서 백두산,동해안 바위틈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곳곳에서 자라는 야생화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 사진들은 모두 조 부사장이 직접 찍었다.그의 취미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야생화를 카메라에 담는 것이다.그는 지인들을 위해 작년 말 자비(自費)로 1000부의 달력을 인쇄해 나눠 주고 한 부는 사무실 벽에 걸어놨다.

조 부사장은 "카메라는 내 인생에서 만난 가장 재미있는 장난감"이라며 "사진 찍기에 빠지다 보니 그 재미있던 골프도 끊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학창 시절부터 사진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대학(서울대 법대) 시절 교양 수업으로 사진학 강의를 듣기도 했다.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해 카메라를 사서 취미로 삼는 것은 엄두도 못 냈다.그러다 1981년 입사(당시 포항제철)하고 나서 아예 사진과는 담을 쌓았다.

조 부사장이 다시 사진에 빠진 것은 2001년 포스코건설 전무 시절 일본 출장이 계기가 됐다.그는 당시 아들을 위해 현지에서 카메라를 구입하면서 처음으로 디지털 카메라를 만져 봤다.

"이래저래 조작하다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옛날 생각이 나면서 재미가 솟구치더라고요.결국 제 것도 하나 더 샀죠."

처음에는 집안에서 기르던 꽃을 찍었다.그와 아내 모두 꽃을 좋아해 잔뜩 기르고 있던 터였다.그러다 야외에서 사진을 찍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그래서 택한 것이 야생화다.처음에는 혼자 나가 찍다가 아예 야생화를 촬영하는 인터넷 동호회에 가입,본격적으로 활동했다.주말이면 회원들과 함께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초보자 용이었던 카메라도 준전문가 급인 '캐논30D'로 바꿨다.

국내에서는 사진을 찍기 위해 안 가 본 곳이 없을 정도다.설악산 등 명산은 물론 이름 모를 야산의 숲속과 절벽가,바닷가 바위틈,시골 들판 등이 모두 그의 촬영지다.군 부대와 교섭을 벌여 비무장 지대에 들어가 사진을 찍은 적도 있다.동호회 회원이었던 해당 사단의 부사단장이 힘을 써 줬다.해외 촬영도 빈번하다.지난해 여름에는 회원들과 3박4일 동안 몽골 초원을 뒹굴면서 야생화를 찍었다.

험난한 일도 많았다.산에서 뱀과 마주치는 것은 비일비재하다.그는 "셔터를 누르다 보니 바로 1m 앞에서 뱀이 노려본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지난해 여름에는 야생화 솜다리를 찍으러 설악산에 갔다가 계곡에서 굴러 어깨를 다쳤다.그는 지금도 통증이 가시지 않아 병원을 오가며 치료받고 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지난해 2월 가족들과 베트남으로 여행 갔다 차로 지나는 길에 언덕 아래 연못에 핀 연꽃을 발견했다.그냥 지나칠 수 없어 차를 세우고 나와 사진을 찍는데 갑자기 언덕 위에 서서 그를 바라보던 아내가 비명을 질렀다.고개를 든 조 부사장 앞에는 투우 장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사납게 생긴 소 한 마리가 돌진해 오고 있었다.도망 칠 곳이 없던 그는 소똥으로 범벅된 연못으로 뛰어들었다.조 부사장은 "큰 화는 면했지만 일주일 동안 소똥 냄새가 가시지 않아 괴로웠다"며 웃음 지었다.

그는 야생화 촬영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다."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꽃의 아름다움에서 환희를 느껴요.2005년 여름에는 아내와 함께 백두산에 가서 돌꽃을 찍었는데 정말 연극배우 윤석화씨보다도 예뻐 가슴이 아릴 정도였습니다."

조 부사장은 2006년 4월에는 자신의 야생화 사진 30점을 모아 서울 서초동 포스코건설 모델하우스에서 전시회도 열었다.5일 동안 450여명이 방문해 그의 사진을 감상했다.그는 2년 만인 올해 5월 두 번째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야생화를 찍다 보니 예전에는 갖지 못했던 문제 의식도 생겼다.일제시대 당시 일본인들에 의해 대부분의 한국 야생화가 학계에 보고돼 일본 이름으로 학명이 정해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금강초롱이라는 꽃은 학명이 '하나부사야 아시아티카 나카이'에요.누가 이 이름을 듣고 한국 꽃이라고 생각하겠어요.뜻을 같이하는 분들을 모아 개명 운동을 벌일 겁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