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선 호 <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화가 www.choisunho.com >

2008년 1월 마지막 날,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5364m)를 가기 위해 비행기가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 다가가자 멀리 구름 위로 히말라야의 설산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나는 등산가도 아니요,산악인은 더욱 아니다.나는 화가다.산이라고 하면 대학 졸업하던 그해 여름 백담사 계곡을 따라 설악산 대청봉을 한번 오른 아득한 옛 기억이 고작이고,그저 청계산이나 북한산 비봉 언저리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동네 뒷동산 오르기가 딱 내 수준인 초짜 애숭이다.이런 내가 뜻하지 않은 기회에 에베레스트 산행을 선뜻 결정했다.마음이 복잡했다.나는 왜 에베레스트를 갈까.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고산트레킹의 걱정이 뒤엉켰다.어떤 곳이기에 한번 다녀오면 다시 안 갈 수가 없다고 하는가.

정상은 오르려는 꿈을 가진 자가 오른다.떠날 때는 새로운 세계가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가 생겼지만,그 기대는 고산병의 두려움과 혹한의 추위와 낯섦으로 고스란히 바뀌었고,부족한 물과 산소가 대신했다.깊고 푸른 히말라야의 새벽하늘 다이아몬드 같이 반짝이는 별빛에 눈이 서걱거리고 아팠고,만년설 녹은 물이 부서져 내리는 연둣빛 옥색의 순수함에 눈부셨다.맑은 바람소리와 거대한 설산의 새로운 세상은 외경이었다.

해발 2840m의 루크라에서 트레킹을 시작한 지 8일째,온몸이 납덩이처럼 무겁다.고산병의 두려움과 추위,그리고 부족한 산소와 가쁜 숨이 엄습했다.쿰부의 빙하지대는 걷기도 힘들고 숨쉬기는 더욱 힘들다.눈에 뻔히 보이는 베이스캠프가 가도 가도 끝이 없다.눈은 그쳤지만 날은 흐려 눕체의 정상(7861m)이 보이다말다 했다.오후 1시40분 드디어 꿈에 그리던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도착했을 때 드디어 해냈다는 사실에 온몸과 마음이 기뻐했다.

에베레스트 정상은 보이지 않고 산꼭대기에서 불어내리는 히말라야 바람이 온몸을 얼어붙게 했다.다음날 새벽 영하 30도,칼라파트라 정상(5550m)에서 바라본 에베레스트 일출은 황홀했다.이날 일기장에 "에베레스트 일출,마치 한송이 모란이 꽃봉오리를 펼쳐낸 듯 하늘엔 붉고 푸른 기운이 가득하다.무지무지 춥다"라고 적었다.결정적인 순간에는 대답이 간단하다.지금 생각해도 춥고 떨린다.

귀국길에 다시 히말라야 설산을 보았다.뿌듯함과 고단함,에베레스트에 대한 애증이 교차한다.베이스캠프 다녀온 지 이제 겨우 보름밖에 안 지났는데 새록새록 생각이 난다.내년에 다시 갈 것만 같은 예감,이게 에베레스트의 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