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수 장관 직격 인터뷰 "집값 안정되면 부동산세 손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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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역시 감세론자였다.
지난달 29일 자정께 만난 그는 참여정부가 도입한 종합부동산세 등에 대한 '수술 의지'를 강력히 내비쳤다.
하지만 야인(野人)시절 거침없던 비판과는 달리 인터뷰 내내 '시장 안정'을 강조하는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취임 후 첫 기자회견과 직원과의 다과회,저녁 약속 등을 모두 소화한 뒤 집으로 돌아온 그에게 피곤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의 철학과 소신을 들어봤다.
'황소고집'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과천에 컴백했다.
꼭 10년 만이다.
강 장관이 공직을 떠난 것은 1998년 3월.재정경제원 차관 자리에서 물러난 그는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야인생활 절반 이상을 '경제 대통령 만들기'에 주력해왔다.
과장 시절,장관의 지시라 하더라도 부당하다 생각되면 끝까지 물러서지 않아 '황소고집'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강 장관.그는 이제 MB노믹스의 '컨트롤타워'를 맡아 자신의 경제철학을 펼 수 있게 됐다.
강 장관이 과천에 재입성한 지난달 29일 밤,그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자택 앞에서 만났다.
강 장관은 "비서실장이 절대로 인터뷰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며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지만 10분을 넘게 졸라대자 어쩔 수 없다는 듯 "소주나 한 잔 하고 가라"며 아파트 상가 골뱅이집으로 기자들의 소매를 이끌었다.
-단골집인 것 같습니다.
"슬픈 얘기예요.이 집에 자주 왔다는 얘기는…."
야인으로 지낸 10년이라는 세월이 그의 얼굴에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는 달포 전 기자와 만났을 때 "친구들이나 동료들을 불러내 술을 마시다보니 언제부터인가 내가 '성가신 존재'가 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그 이후로는 웬만하면 혼자 술을 마셨어요.
스스로도 명상하면서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하고…"라고 말한 적이 있다.
-과천(정부청사)으로 돌아온 느낌이 어떻습니까.
"감회가 어떠냐고 묻는 사람이 많은데,별로 실감이 나질 않아요.
공직을 그만둔 뒤에도 나는 언론에 계속 글을 썼으니까.
어떤 때는 일주일 전부터 고민을 하다가 하루 전날 글을 쓰고,자다가 새벽 3시에 벌떡 일어나 다시 쓰고….그때 내 존재 이유는 한경 '다산칼럼'이었지."
그는 한국경제신문 다산칼럼의 주요 필진으로 7년 넘게 칼럼을 집필하면서 두터운 독자층을 확보한 인기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기획재정부 장관 취임식을 하지 않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취임식이라는 것은 일본 군국주의의 잔재입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식민지를 통치하기 위해 만든 제도이지요.
부산에는 옛날 일본 학교와 조선 학교가 있는데,일본 학교는 교문을 들어서면 바로 현관이 나옵니다.
하지만 조선인이 다니던 학교는 운동장이 나오지요.
학교에 들어갈 때 천황폐하에 대한 충성문을 외우도록 하고,못 외우면 두들겨 패고,운동장을 돌리고….피눈물나는 얘기예요."
-국회 인사 청문회에서 "야인 생활 10년에 세금만 더 많이 냈다"고 말씀하셨는데….
"청문회 답변을 하는 과정에서 '종부세는 조세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얘기했습니다.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는 것을 전제로 해서 개선하는 방안을 생각해보겠다고 얘기했지요.
그런데 질의하는 의원이 종부세가 마치 좋은 제도인 것처럼 얘기했고 내가 대치동에 아파트 갖고 있는 것을 거론했어요.
그래서 뭔가 말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파트 하나 갖고 있을 뿐 아무런 소득 없이 사는 사람(자신)이 지난 11월에 1700만원을 냈어요.
매년 세금이 두 배씩 올라가지 않습니까."
강 장관은 종부세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주거를 세금으로 제한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요.
앞에 있는 은마아파트에 사는 어떤 사람은 40여년 은행에서 근무하다 퇴직해 살고 있는데 세금이 갑자기 500만원 나왔다고 해요.
은행에서 400만원 빌려 세금을 냈답디다.
퇴직할 때까지 돈 모아 집을 샀는데 그 집을 왜 팔아야 합니까.
나도 이 동네가 허허벌판인 시대에 들어왔어요.
1983년에 아파트 당첨이 돼 들어와 주변머리가 없어 계속 한곳에서 살았는데,집값이 오르고 올라 이렇게 됐어요."
-하지만 누구나 살고 싶어하는 곳의 주거비용을 높이지 않으면 집값이 계속 오를 것으로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논리로 얘기하자면 우리 동네 아파트에는 돈없는 사람은,연봉 1억2000만원이 되지 않는 사람은 먹고 살 수가 없어.적어도 2억원 되지 않으면 나가란 얘기 아닙니까.
이 동네에서는 재벌이나 재벌2세 말고는 살지 말라는 얘기지.조세 원리가 있잖아요.
원본을 훼손하면 안된다는 거.내가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10년을 세금에 대해 공부했어요."
-양도세 장기보유 특별공제를 높인 효과가 미미하다는 시장의 비판도 있습니다.
"그건 내가 잘 모르지.양당(통합민주당과 한나라당)에서 했으니까."
-1주택 보유자에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주택 보유자는 집을 팔아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것이니까 양도차익을 소득으로 보기가 어렵지요.
이름이 양도소득세이긴 하지만 판 집보다 더 좋은 집을 사니까 생기는 것 하나도 없잖아.소득이 없는데 무슨 소득셉니까.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어.소득이 있는 곳에 소득세를 매기는 겁니다.
깔고 앉아 있으면 마찬가지 아닙니까.
소득이 아닌 것에 세금을 부과할 수 없지요."
-그럼 종부세와 양도세를 크게 손보겠네요.
"우선 집값이 안정돼야지."
강 장관은 평소 소신과 정책결정권자로서의 행동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는 "시장 안정이 최우선"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세금에 대한 자신의 철학이나 의견을 묻는 질문에 거침없이 답변하던 것과는 영 딴판이었다.
"부동산 시장에 안 좋은 사인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우려도 빠뜨리지 않았다.
-달러화 약세를 포함해서 세계 환율이 심상치 않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뭔가 나올거예요.국부펀드에 관한 얘기라든지,여러 가지 것들이."
-1985년의 플라자 합의 같은 조치가 나오기에는 외환시장이 너무 커지지 않았습니까.
"플라자 합의 때에는 미국 의도대로 해결됐는데,내가 알기로는 당시 일본이 가장 많이 당했지만 자존심은 독일이 굉장히 상했을 겁니다.
독일이 마르크화를 포기하고 왜 유로를 선택했겠어요.
달러에 당하니까,미국한테 눌리지 않으려고 그런 것 아닙니까.
유로화로 바뀌니까 미국도 쉽게 어쩔 수는 없지요.
위안화는 옛날에는 별 볼일 없었으나 중국이라는 나라가 워낙 크고 여러 가지로 힘이 세서 영향력이 커졌지요."
-서브프라임 사태는 빨리 해결될 것 같습니까.
"잘 모르겠는데.(웃음)"
질문이 까다로워지자 강 장관은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그저 가벼운 얘기로 마감하자고.정식 인터뷰 아니야.남은 술이나 비우고 갑시다."
그는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기자들한테 솔직하게 얘기하겠다"며 "다만 언론사의 이익 차원에서 기사를 쓰지는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신의 뜻이 국민에게 잘못 전달되는 것이 가장 두렵다고도 했다.
현승윤/김인식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