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민의 마중물 논술] (44) 민주주의는 얍삽한 국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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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힐러리 드라마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일까?
아니면 최초의 흑인 대통령일까?
힐러리 클리턴은 오랫동안 차기 대통령으로 손꼽혀왔다.
'남편과 함께'라는 8년 동안의 국정 경험과 미국 정치 중심지 뉴욕 주의 상원의원이라는 막강한 이력이 그녀의 무기다.
선거 판도를 예측하는 데 가장 좋은 지표라고 알려져 있는 선거자금 모금에서도 양당을 통틀어 1등을 유지해왔었다.
그러던 그녀가 군소(群小) 주에서 오바마 의원에게 11연패를 하고 나자 돈줄이 말라 고전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지난 2월 한 달 동안 힐러리는 3200만달러(약 320억원)를 모금했지만 오바마는 5000만달러(약 469억원)를 모금했다.
오바마 캠프는 우세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두 배나 많은 돈을 홍보에 쏟아부었다고 한다.
힐러리 진영에서 뛰고 있는 테드 스트릭랜드 주지사는 "만약 대통령 후보가 돈으로 경매되는 상품이라면 결국 오바마가 구입하게 될 것"이라고 비꼬았다.
오바마의 승리가 굳어지는 분위기가 한동안 지속되자 오랫동안 힐러리를 따라다녔던 대의원들이 오바마 쪽으로 기울었다.
이 기욺을 따라 돈도 오바마 쪽으로 쏠렸다.
오바마가 이길 것 같기 때문에 그에게 돈이 몰리는 것일까?
아니면 돈이 몰려서 그가 이길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일까?
그러나 속단은 금물이다.
3월4일 텍사스와 오하이오 주에서 힐러리가 승리했다.
힐러리가 승리하자 다시 여론이 움직였다.
전국단위 지지도에서도 힐러리가 오바마에게 5%포인트 앞선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이렇게 되면 선거자금에도 숨통이 트일 것이다.
선거는 정말 이겨놓고 봐야 하는 일이다.
⊙ 승자 독식
동물의 세계에서 우두머리는 우두머리답게 행동한다.
늑대 무리에서 우두머리는 금방 알아볼 수 있다.
고개를 꼿꼿이 들고 전방을 응시하며 자신감에 차서 다른 늑대들에게 다가간다.
마찬가지로 붉은털 원숭이 수컷도 의도적으로 늘어지는 자세를 취해 자신의 지위를 나타낸다.
머리와 꼬리는 치켜들고, 고환은 늘어뜨리고, 몸은 천천히 그리고 느긋하게 움직인다.
그러면서 시야에 나타난 다른 원숭이들을 주저없이 찬찬히 뜯어본다(E O Wilson 'Sociobiology').
우두머리의 이런 자신만만하고 느긋한 행동거지에 비하면 다른 구성원들은 재빠르고 조바심을 내며 우두머리를 자주 그러나 빠르게 주시한다.
동물사회의 위계구조는 피드백(Feedback)으로 설명된다.
우두머리는 처음부터 그렇게 자신만만한 태도가 아니었다.
어떤 결정적인 승리가 있고 나서 자신감이 살짝 묻어난다.
그와 경합했던 원숭이는 위축된 자세를 보인다.
이 태도의 차이는 점점 뚜렷해진다.
승자의 당당한 태도라는 신호를 받아들인 약자들은 위축된 태도로 응답한다.
약자들의 신호가 승자의 태도를 더욱 강화하고 승자의 강화된 태도는 약자를 더욱 위축시킨다.
이런 대비되는 태도의 차이는 결정적인 계기가 있기 전까지 지속된다.
쌍살벌의 경우 피드백은 가혹하게 운명을 결정한다.
겨울 동안 같은 은신처에서 생활한 암컷 몇 마리가 서로 협동하여 새로운 군락을 세운다.
그러나 초기에는 협동이라기보다는 난타전에 가깝다.
그러다가 싸움은 서열이 정해지면서 급격히 줄어든다.
우두머리 암컷은 가장 많은 알을 낳을 수 있다.
다른 암벌들도 알을 낳지만 우두머리 암벌에게 발견되면 먹히고 만다.
머지않아 다른 암벌의 난소는 퇴화하여 더 이상 산란 시도를 하지 않게 된다.
대신 이 암벌들은 일벌이 되어 우두머리 암벌의 새끼를 돌본다.
그러나 서열이 바뀌어 우두머리가 되면 다시 난소가 기능을 회복한다(주디스 리치 해리스 '개성의 탄생').
⊙ 기 싸움의 이익
우두머리의 뻣뻣한 모가지와 째려 내리는 눈빛 앞에서 비굴할 정도로 설설 기는 약자의 행동은 게임이론으로 설명된다.
생물 개체의 지상목표가 생존과 번식(생식)이라면 자기가 우두머리가 되는 것이 생식과 생존을 추구하기에 가장 이롭다.
그러나 우두머리와 싸우면 생존이 위험하다.
비록 생식의 기회는 극히 제한되거나 봉쇄되지만 우두머리에게 복종하면 생존은 보장된다.
싸우지 않고 무리를 떠나면 생식의 자유는 얻지만 배를 곯다 죽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비등한 근력을 갖는 개체들이라면 모두 우두머리를 꿈꾸며 야심을 불태워 볼만하다.
개체로서는 이익이 가장 큰 선택이다.
그러나 집단으로서는 최악이다. 싸움으로 날을 지새우다 보면 그나마 집단이라는 안전망이 파괴되고 말기 때문이다.
어차피 평등할 수 없다면 서열이 일찍 정해져서 오래 지속되는 게 집단 전체로서는 가장 이득이다.
우두머리가 내뿜는 권위적인 기운은 동물집단 내부의 폭력을 최소화하는 평화적이며 경제적인 의사소통이라는 게 학자들의 생각이다.
우두머리들은 매번 적의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지 않으면서도 집단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승자마저도 어느 정도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는 폭력사태 없이 서열을 유지하는 방법이 동물 세계의 기 싸움이다.
공맹을 알 리 없는 동물들에게 있어 '기 싸움'은 '기 대화'나 심지어는 '기 예의'라고 불러야 정당할지 모른다.
⊙ 민주주의의 비용
동물세계의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이 만들어낸 민주주의는 어이없는 시스템이다.
만약 권력이 필요악이라면 그나마 권력의 안정과 지속성이 이 악이 제공하는 순기능이요 서비스다.
구성원들이 서로 알 수 없을 만큼 큰 추상적 공동체에서 권력다툼에서 얻을 게 있는 엘리트들은 어차피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 엘리트에게야 누가 권력을 쟁취하느냐가 매우 중요하지만 대다수 구성원들에게는 그다지 첨예하지 않다.
하지만 엘리트들 간의 권력 다툼이 극단으로 치달아 질서가 깨지고 사회가 붕괴되면 대다수 구성원도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왕권의 장자 세습이 여러 문명권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건 우수한 지도자의 선별에 따르는 이득보다 권력 다툼이 주는 사회적 비용을 훨씬 부담스럽게 여겨왔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그럼에도 자질과 상관없는 장자 세습은 엘리트 내부에서는 설득력이 약해 원칙적으로 지켜진 경우가 오히려 드물다고 해야 할 정도다.
인류역사 대부분의 기간에 걸쳐 제도화된 왕권의 관점에서 보면 민주주의는 차라리 농담에 가깝다.
몇 년에 한 번씩 권력 교체를 제도화하기 때문이다.
절대권력의 부패를 방지하고 우수한 인재를 발탁한다는 명분상의 합리성에도 불구하고 권력 투쟁과 권력 교체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혼란의 비용을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국민 다수가 뽑은 리더가 반드시 현명한 리더가 되리라는 보장이 없다면 차라리 제비를 뽑아 가려진 리더가 상당 기간 안정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게 애당초 권력과 거리가 먼 대다수 국민에게 훨씬 이롭다.
⊙ 민주주의에 대한 적응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최근 지지도는 가련할 정도다.
임기를 1년이나 남겨 논 미국의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도 최악이다.
임기 말년에 지지도가 오르는 지도자도 없지 않기에 이런 나쁜 여론은 상당 부분 본인들의 책임이다.
그러나 피드백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떠나는 지도자에 대한 나쁜 평판이 전적으로 지도자의 탓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제 막 임기를 시작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도 국민들의 생물학적 적응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어차피 권력이 바뀌었는데 전임자에 대해 지지를 유지하거나 후임자에 대한 지지를 유보하면 정치적 긴장이 증대한다.
떠나는 이에게서 시작한 이에게로 확 옮겨버리면 리더십의 변화가 명쾌해진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낮은 지지는 그가 지는 해이기 때문이고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높은 지지는 그가 뜨는 해이기 때문일지 모른다는 소리다.
민주주의가 뿌리내린 사회일수록 양당(兩黨)제가 정착된 편이라는 사실도 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의 적응을 암시한다.
어떤 정책에 대해 국민의 생각은 국민 수만큼이나 다양할 수 있지만 양당제는 둔탁하게 잘라낸다.
자신의 생각이 힐러리와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지지자는 공화당의 존 매케인보다는 오바마가 낫다고 판단할 수 있다.
힐러리가 이긴다면 가장 좋지만 오바마가 가능성이 높을 때는 오바마를 응원하는 게 매케인을 피하는 최선이다.
오바마의 초기 지지층은 '오바마이기 때문'이었지만 그의 승리가 구체화될수록 '그가 매케인보다 낫다'고 판단하는 지지자가 늘어난다.
그러다가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기라도 하면 그와 죽기 살기로 일합을 겨룬 매케인에게 표를 주었던 국민들 중 상당수도 마음을 바꿔 당선자를 지지하기 시작한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었기 때문에'가 이들이 지지를 바꾸는 거의 유일한 이유일 수도 있다.
선거캠프 입장에서는 승리 가능성에 따라 지지를 바꾸는 이런 유권자가 야속하다.
그러나 이런 국민이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그나마 상처를 봉합하며 그럭저럭 꾸려 나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일까?
아니면 최초의 흑인 대통령일까?
힐러리 클리턴은 오랫동안 차기 대통령으로 손꼽혀왔다.
'남편과 함께'라는 8년 동안의 국정 경험과 미국 정치 중심지 뉴욕 주의 상원의원이라는 막강한 이력이 그녀의 무기다.
선거 판도를 예측하는 데 가장 좋은 지표라고 알려져 있는 선거자금 모금에서도 양당을 통틀어 1등을 유지해왔었다.
그러던 그녀가 군소(群小) 주에서 오바마 의원에게 11연패를 하고 나자 돈줄이 말라 고전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지난 2월 한 달 동안 힐러리는 3200만달러(약 320억원)를 모금했지만 오바마는 5000만달러(약 469억원)를 모금했다.
오바마 캠프는 우세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두 배나 많은 돈을 홍보에 쏟아부었다고 한다.
힐러리 진영에서 뛰고 있는 테드 스트릭랜드 주지사는 "만약 대통령 후보가 돈으로 경매되는 상품이라면 결국 오바마가 구입하게 될 것"이라고 비꼬았다.
오바마의 승리가 굳어지는 분위기가 한동안 지속되자 오랫동안 힐러리를 따라다녔던 대의원들이 오바마 쪽으로 기울었다.
이 기욺을 따라 돈도 오바마 쪽으로 쏠렸다.
오바마가 이길 것 같기 때문에 그에게 돈이 몰리는 것일까?
아니면 돈이 몰려서 그가 이길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일까?
그러나 속단은 금물이다.
3월4일 텍사스와 오하이오 주에서 힐러리가 승리했다.
힐러리가 승리하자 다시 여론이 움직였다.
전국단위 지지도에서도 힐러리가 오바마에게 5%포인트 앞선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이렇게 되면 선거자금에도 숨통이 트일 것이다.
선거는 정말 이겨놓고 봐야 하는 일이다.
⊙ 승자 독식
동물의 세계에서 우두머리는 우두머리답게 행동한다.
늑대 무리에서 우두머리는 금방 알아볼 수 있다.
고개를 꼿꼿이 들고 전방을 응시하며 자신감에 차서 다른 늑대들에게 다가간다.
마찬가지로 붉은털 원숭이 수컷도 의도적으로 늘어지는 자세를 취해 자신의 지위를 나타낸다.
머리와 꼬리는 치켜들고, 고환은 늘어뜨리고, 몸은 천천히 그리고 느긋하게 움직인다.
그러면서 시야에 나타난 다른 원숭이들을 주저없이 찬찬히 뜯어본다(E O Wilson 'Sociobiology').
우두머리의 이런 자신만만하고 느긋한 행동거지에 비하면 다른 구성원들은 재빠르고 조바심을 내며 우두머리를 자주 그러나 빠르게 주시한다.
동물사회의 위계구조는 피드백(Feedback)으로 설명된다.
우두머리는 처음부터 그렇게 자신만만한 태도가 아니었다.
어떤 결정적인 승리가 있고 나서 자신감이 살짝 묻어난다.
그와 경합했던 원숭이는 위축된 자세를 보인다.
이 태도의 차이는 점점 뚜렷해진다.
승자의 당당한 태도라는 신호를 받아들인 약자들은 위축된 태도로 응답한다.
약자들의 신호가 승자의 태도를 더욱 강화하고 승자의 강화된 태도는 약자를 더욱 위축시킨다.
이런 대비되는 태도의 차이는 결정적인 계기가 있기 전까지 지속된다.
쌍살벌의 경우 피드백은 가혹하게 운명을 결정한다.
겨울 동안 같은 은신처에서 생활한 암컷 몇 마리가 서로 협동하여 새로운 군락을 세운다.
그러나 초기에는 협동이라기보다는 난타전에 가깝다.
그러다가 싸움은 서열이 정해지면서 급격히 줄어든다.
우두머리 암컷은 가장 많은 알을 낳을 수 있다.
다른 암벌들도 알을 낳지만 우두머리 암벌에게 발견되면 먹히고 만다.
머지않아 다른 암벌의 난소는 퇴화하여 더 이상 산란 시도를 하지 않게 된다.
대신 이 암벌들은 일벌이 되어 우두머리 암벌의 새끼를 돌본다.
그러나 서열이 바뀌어 우두머리가 되면 다시 난소가 기능을 회복한다(주디스 리치 해리스 '개성의 탄생').
⊙ 기 싸움의 이익
우두머리의 뻣뻣한 모가지와 째려 내리는 눈빛 앞에서 비굴할 정도로 설설 기는 약자의 행동은 게임이론으로 설명된다.
생물 개체의 지상목표가 생존과 번식(생식)이라면 자기가 우두머리가 되는 것이 생식과 생존을 추구하기에 가장 이롭다.
그러나 우두머리와 싸우면 생존이 위험하다.
비록 생식의 기회는 극히 제한되거나 봉쇄되지만 우두머리에게 복종하면 생존은 보장된다.
싸우지 않고 무리를 떠나면 생식의 자유는 얻지만 배를 곯다 죽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비등한 근력을 갖는 개체들이라면 모두 우두머리를 꿈꾸며 야심을 불태워 볼만하다.
개체로서는 이익이 가장 큰 선택이다.
그러나 집단으로서는 최악이다. 싸움으로 날을 지새우다 보면 그나마 집단이라는 안전망이 파괴되고 말기 때문이다.
어차피 평등할 수 없다면 서열이 일찍 정해져서 오래 지속되는 게 집단 전체로서는 가장 이득이다.
우두머리가 내뿜는 권위적인 기운은 동물집단 내부의 폭력을 최소화하는 평화적이며 경제적인 의사소통이라는 게 학자들의 생각이다.
우두머리들은 매번 적의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지 않으면서도 집단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승자마저도 어느 정도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는 폭력사태 없이 서열을 유지하는 방법이 동물 세계의 기 싸움이다.
공맹을 알 리 없는 동물들에게 있어 '기 싸움'은 '기 대화'나 심지어는 '기 예의'라고 불러야 정당할지 모른다.
⊙ 민주주의의 비용
동물세계의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이 만들어낸 민주주의는 어이없는 시스템이다.
만약 권력이 필요악이라면 그나마 권력의 안정과 지속성이 이 악이 제공하는 순기능이요 서비스다.
구성원들이 서로 알 수 없을 만큼 큰 추상적 공동체에서 권력다툼에서 얻을 게 있는 엘리트들은 어차피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 엘리트에게야 누가 권력을 쟁취하느냐가 매우 중요하지만 대다수 구성원들에게는 그다지 첨예하지 않다.
하지만 엘리트들 간의 권력 다툼이 극단으로 치달아 질서가 깨지고 사회가 붕괴되면 대다수 구성원도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왕권의 장자 세습이 여러 문명권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건 우수한 지도자의 선별에 따르는 이득보다 권력 다툼이 주는 사회적 비용을 훨씬 부담스럽게 여겨왔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그럼에도 자질과 상관없는 장자 세습은 엘리트 내부에서는 설득력이 약해 원칙적으로 지켜진 경우가 오히려 드물다고 해야 할 정도다.
인류역사 대부분의 기간에 걸쳐 제도화된 왕권의 관점에서 보면 민주주의는 차라리 농담에 가깝다.
몇 년에 한 번씩 권력 교체를 제도화하기 때문이다.
절대권력의 부패를 방지하고 우수한 인재를 발탁한다는 명분상의 합리성에도 불구하고 권력 투쟁과 권력 교체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혼란의 비용을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국민 다수가 뽑은 리더가 반드시 현명한 리더가 되리라는 보장이 없다면 차라리 제비를 뽑아 가려진 리더가 상당 기간 안정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게 애당초 권력과 거리가 먼 대다수 국민에게 훨씬 이롭다.
⊙ 민주주의에 대한 적응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최근 지지도는 가련할 정도다.
임기를 1년이나 남겨 논 미국의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도 최악이다.
임기 말년에 지지도가 오르는 지도자도 없지 않기에 이런 나쁜 여론은 상당 부분 본인들의 책임이다.
그러나 피드백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떠나는 지도자에 대한 나쁜 평판이 전적으로 지도자의 탓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제 막 임기를 시작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도 국민들의 생물학적 적응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어차피 권력이 바뀌었는데 전임자에 대해 지지를 유지하거나 후임자에 대한 지지를 유보하면 정치적 긴장이 증대한다.
떠나는 이에게서 시작한 이에게로 확 옮겨버리면 리더십의 변화가 명쾌해진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낮은 지지는 그가 지는 해이기 때문이고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높은 지지는 그가 뜨는 해이기 때문일지 모른다는 소리다.
민주주의가 뿌리내린 사회일수록 양당(兩黨)제가 정착된 편이라는 사실도 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의 적응을 암시한다.
어떤 정책에 대해 국민의 생각은 국민 수만큼이나 다양할 수 있지만 양당제는 둔탁하게 잘라낸다.
자신의 생각이 힐러리와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지지자는 공화당의 존 매케인보다는 오바마가 낫다고 판단할 수 있다.
힐러리가 이긴다면 가장 좋지만 오바마가 가능성이 높을 때는 오바마를 응원하는 게 매케인을 피하는 최선이다.
오바마의 초기 지지층은 '오바마이기 때문'이었지만 그의 승리가 구체화될수록 '그가 매케인보다 낫다'고 판단하는 지지자가 늘어난다.
그러다가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기라도 하면 그와 죽기 살기로 일합을 겨룬 매케인에게 표를 주었던 국민들 중 상당수도 마음을 바꿔 당선자를 지지하기 시작한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었기 때문에'가 이들이 지지를 바꾸는 거의 유일한 이유일 수도 있다.
선거캠프 입장에서는 승리 가능성에 따라 지지를 바꾸는 이런 유권자가 야속하다.
그러나 이런 국민이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그나마 상처를 봉합하며 그럭저럭 꾸려 나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