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250여개 사립 박물관을 다 죽일 작정이냐." "치밀한 사전 준비도 없이 갑자기 무료화하면 그 부작용을 어떻게 감당하나."

새 정부가 오는 5월부터 전국 31개 국립 중앙·지방 박물관과 국립 민속박물관,국립 현대미술관의 관람료를 없애기로 한 것과 관련해 사립 박물관 및 전문가들의 반발과 비판이 커지고 있다.국민의 문화향수권 확대라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철저한 준비 없이 무료화 정책을 실시할 경우 부작용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생존 위협 호소하는 사립기관들=가장 크게 반발하는 쪽은 운영비의 상당 부분을 관람료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사립 박물관·미술관들. 이들은 "관람료가 폐지되면 국립 기관(박물관·미술관)으로 관람객이 몰릴 뿐만 아니라 사립 기관들도 관람료 폐지 압력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며 "그에 따른 손실을 정부가 보전해주지 않을 경우 사립 기관들은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전보삼 한국사립박물관협회 회장은 "전국 사립 박물관들의 관람료 수입이 운영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30%가량"이라며 "정부가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너무 성급하게 무료화를 서두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무료화,좋기만 할까=무료관람제가 가져올 역기능도 걱정거리다.우선 관람문화가 저급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문화재나 예술품에 대한 관심보다는 '공짜심리'에 편승해 너도나도 입장할 경우 차분히 감상할 수 있는 분위기가 깨지고 관람 환경이 악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이 때문에 무료화 대책을 마련 중인 국립중앙박물관도 관람객 관리 방식과 서비스인프라 구축 등을 함께 고려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관람료 폐지에 따른 손실을 정부예산에서 보전하는 것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박물관·미술관 관람료를 관람객에게 물리는 것이 아니라 국민 전체에게 전가하는 것이 합당하냐는 것.무료관람제가 외국인 관람료 수입 감소를 초래한다는 지적도 있다.

국내 박물관 가운데 관람객이 가장 많은 국립민속박물관의 경우 지난해 전체 관람객 174만6000명 중 외국인 관람객은 52.5%인 91만5800명.내국인 관람객 중 상당수가 무료 관람이어서 전체 관람료 수입(9억2300만원) 중 외국인 관람료는 7억원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어떻게 해야 하나=국·공립기관은 물론 사립 박물관·미술관 등의 전반적인 운영 실태와 현황을 파악해 피해가 가지 않도록 단계적으로 실시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경희대 최병식 교수는 "국·공립 기관의 무료관람제 취지는 좋으나 실시 시기와 절차에 큰 문제가 있다"며 단계적 실시를 제안했다.특정 요일·대상별 무료관람제 실시(1단계),영국의 '뮤지엄 르네상스' 프로그램처럼 국·공기관을 무료화하면서 지원하되 사립기관 연계 지원(2단계),사립 박물관 경쟁력 확보(3단계) 등 단계적 추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강배형 국립중앙박물관 행정지원과장은 "지금은 관람료 무료화 원칙만 정해져 있을 뿐 구체적인 계획은 중앙·지방 박물관과 미술관 등의 상황을 종합해 마련하게 될 것"이라며 "사립 기관에 대한 지원 여부도 아직은 결정되지 않은 상태"라고 밝혔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