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펀드시장 외국계 종속 심화‥올 신규 28개중 국내사 운용 고작 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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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넘게 고생해서 해외 펀드를 내놨더니 경쟁사인 외국계 회사들이 해외에서 판매하고 있는 비슷한 펀드를 잇달아 들여다 맞불을 놓더군요.실제 운용은 해외 업체가 맡는 펀드를 껍데기만 새롭게 포장해 내놓고 쉽게 경쟁하는 셈이니 힘빠지는 일이죠."
국내 중견 자산운용사에 근무하는 한 직원은 위탁 운용 펀드가 무분별하게 늘어나고 있는 데 대해 이렇게 하소연했다.
해외에 운용을 맡기는 위탁 펀드가 급증하면서 해외 펀드 시장에서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사정이 이렇다 보니 해외 네트워크를 가진 대형 글로벌 자산운용사뿐 아니라 국내 운용사들도 위탁 펀드를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위탁 펀드 바람은 해외 전문가에 운용을 맡긴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한국 펀드시장의 해외 종속을 심화시킨다는 따가운 지적을 받고 있다.
◆해외펀드 과실은 외국 운용사 몫
해외 주식형펀드 설정액은 지난해 4월 말 15조2518억원에서 올해 2월 말 현재 56조4465억원으로 급증했다.순자산액은 58조5494억원에 이른다.
해외 펀드 돌풍의 주역은 단연 외국계 운용사들이다.해외 펀드 설정액의 약 60%는 외국 자산운용사의 100% 자회사 또는 국내 운용사와의 합작 운용사들이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펀드 실제 운용을 해외에 맡기는 위탁 펀드가 해외 펀드의 주종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올해 설정된 해외 주식형펀드 28개 중 23개는 운용사가 해외에 있다.외국계 운용사의 경우 신상품 전부가 본사의 해외 현지법인에 운용을 위탁하는 펀드다.삼성투신운용 SH자산운용 등 국내 운용사들이 내놓은 해외 펀드 중 상당수도 위탁 펀드다.
삼성투신운용이 지난 1월 초 설정한 '삼성글로벌오퍼튜니티주식'의 경우 영국 라자드자산운용이 실제 운용을 맡고 있다.남미펀드인 '동양라틴스타주식'은 ABN암로가 운용하며 '삼성이머징다이나믹주식'은 외국 주식 운용을 웨스트LB멜론자산운용이 담당한다.
위탁운용사는 펀드 운용보수의 절반가량을 자기 몫으로 챙긴다.'삼성글로벌오퍼튜니티주식'의 연간 운용보수는 펀드 순자산의 0.9%로 이 중 절반인 0.45%는 실제 운용을 맡은 라자드자산운용이 가져간다.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올해 해외 펀드 순유입액은 15조원가량으로 추정된다.이 가운데 60%인 9조원이 외국계 운용사로 간다고 가정할 경우 연간 400억원 이상의 운용보수가 추가로 해외 운용사 몫으로 나간다는 계산이 나온다.
◆인력 양성 서둘러야
운용사들이 위탁 운용 펀드에 의지하는 것은 자체적인 인력과 운용시스템이 부족하기 때문이다.업계 관계자는 "당장 해외 펀드를 팔아야 하는데 해외시장에 대한 정보가 턱없이 부족해 손쉽게 해외 운용사에 위탁하는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중소형 자산운용사 대표는 "특정 지역이나 국가를 잘 아는 외국 운용사에 펀드를 맡겨 전문성을 높이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자체 역량을 키우지 않고 위탁 펀드에만 의존할 경우 펀드시장의 장기 발전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우재룡 한국펀드평가 공동대표는 "일본 노무라투신운용의 경우 해외 10여개국에 자체 리서치조직을 운영하고 있다"며 "국내 운용사들도 전문성 확보를 위한 투자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