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국내 취업시장은 '삼성발 뉴스' 하나로 그야말로 뒤집어졌다.삼성그룹이 2008년부터 신입사원 채용시험에서 영어 말하기를 도입키로 했다는 소식이었다.토익(TOEIC).토플(TOEFL) 등 영어 성적만 높은 '영어 벙어리'는 더 이상 뽑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국내 최대의 채용규모를 자랑하는 기업인 삼성의 이 같은 방침에 취업 준비생은 물론 영어학원 시장까지 요동치게 만들었다.다른 기업들도 속속 입사시험에서 영어 말하기 능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채용 조건을 바꿨다.

삼성은 이처럼 국내 채용시장의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기업이다.채용규모가 많다는 이유도 있지만 삼성의 인적자원 육성이 세계 최고 수준이란 점에서 다른 기업들의 관심을 끈다.실제 삼성은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인력양성소다.삼성을 거친 사장,임원들이 주요 기업의 핵심으로 옮겨가고 일반 직원들조차 경쟁업체에서 고액에 스카웃될 정도다. '삼성맨'들의 인력 경쟁력의 비결은 뭘까.답은 신입사원 시절부터 철저하게 실무와 창의력을 높이는 교육으로 '세계 초일류 산업역군'을 키워낸다는 데 있다.

◆입문 교육부터 다르다

삼성그룹은 매년 7000∼8000명의 신입사원을 뽑는다.물론 신입사원이 됐다고 해서 곧바로 현장에 투입되는 것은 아니다. 1년여에 달하는 입문교육을 거쳐야 한다.이른바 '삼성의 초일류 DNA를 이식받는 과정'이다.

신입사원들이 거쳐야 할 첫 번째 교육과정은 '그룹 공통 입문교육'.4주 동안 선후배들과 합숙하면서 진행되는 이 교육은 △삼성인의 예절 △직장생활의 이해 △삼성의 역사 △창의적 발상법 △극기훈련 △자원봉사 등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다.신입사원들은 이 기간에 '라마드(LAMAD)'와 '크리피아드'라는 독특한 교육 프로그램도 이수해야 한다.'라마드'는 신입사원들이 버스를 타고 특정 지역에 도착한 뒤 직접 영업사원으로 뛰며 제품을 판매하는 프로그램.'크리피아드'는 신입사원들이 30명씩 한 팀을 꾸려 가상의 회사를 설립하고 직접 제품 기획부터 마케팅까지 맡게 하는 교육이다.

4주간의 입문교육이 끝난 뒤에는 하계수련대회가 열린다.강원도 평창 보광휘닉스파크에서 1박2일간 그룹 신입사원 전체와 각사 사장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리는 이 교육은 팀별 장기자랑,계열사별 경연대회 등으로 진행된다.

하계수련대회가 끝나면 드디어 신입사원들은 각 계열사에 배치돼 1년간 본격적인 업무 교육을 받는다.이때 직장 선배들이 '멘토'를 맡아 신입사원들이 회사에 빨리 적응할 수 있게 도와준다.멘토들은 매주 단위로 신입사원들의 성과를 측정하고 개인적인 고민 상담도 해준다.

◆최고 인재가 회사 경쟁력

삼성의 철저한 신입사원 교육은 '기업이 곧 사람이다'라는 고 이병철 회장의 경영철학에서 비롯됐다.이병철 회장은 생전에 자택 거실에 신입사원 교육 스케줄을 걸어 놓고 수시로 검토했을 정도였다.이건희 회장의 인재 사랑도 이에 못지 않다.우수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아낌없는 투자를 하라는 게 이 회장의 평소 지론이다.

이에 따라 삼성은 입문교육을 통해 이른바 '삼성맨'으로 거듭난 신입사원들에게 다양한 자기계발과 재충전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대표적인 사례가 '리더 양성 프로그램'이다.과.부장급과 신임 임원들은 물론 신입사원들까지를 대상으로 하는 이 프로그램은 현 직급보다 한 단계 높은 직급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게 목적이다.해외 지역전문가 제도도 있다.이 제도는 자기 업무에서 일정 정도 성과를 올린 직원들에게 1년간 원하는 해외 지역에서 마음껏 현지 문화와 관습을 배우게 하는 것. 삼성은 또 신입사원을 비롯한 대리급 이하 직원들에게 국내 MBA과정을 이수할 수 있는 기회도 준다.

이 같은 회사의 전방위 지원을 통해 삼성에 입사한 신입사원들은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된다.회사로서는 '맨 파워'를 높여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고 더불어 직원들의 애사심도 키우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