全人大 '스타 기업인' 류촨즈 레노버 회장, 성공한 창업가서 투자가로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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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국회)에는 늘 수십 명의 기자를 끌고 다니는 '스타'들이 등장한다.저우샤오촨 인민은행 총재 같은 고위 관료도 있지만 기업인들도 적지 않다.
류촨즈 레노버홀딩스 회장(64) 역시 전인대 대표로 참가하는 유명 기업인 중 한 명이다.중국 최대 컴퓨터업체 롄샹(영문명 lenovo)의 지주회사인 레노버홀딩스를 이끄는 그는 개혁.개방의 물결을 타고 글로벌 기업을 일군 대표적인 1세대 기업인으로 꼽힌다.그를 보면 30년의 개혁.개방을 통해 중국이 이룬 것과 향후 나아갈 방향을 읽을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예전 영문회사명 레전드(legend)는 그에게 딱 맞는 말이다.
중국 정보기술(IT) 역사의 '전설(legend)'로 통하는 그는 1968년 시안군사전신공정학원을 졸업한 뒤 청두의 연구소에 배치됐지만 수개월 뒤 문화혁명에 휩쓸려 허난성의 농장에서 일하게 된다.하지만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내건 이듬해인 1979년 중국과학원 컴퓨터기술연구소로 발령받으면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군사 예산을 삭감한 중국은 젊은 과학자들에게 알아서 살길을 찾으라고 권했고 그는 연구소 경비초소로 쓰였던 7평짜리 벽돌 건물에서 10명의 동료와 함께 창업했다.바로 그 즈임에 덩샤오핑은 '먼저 부자가 되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는 선부론(先富論)을 승인했다.
수입 PC는 물론 전자시계와 운동화 등을 닥치는 대로 사다 팔았지만 TV를 구매하려다 사기꾼에게 속아 창업자금의 3분의 2를 날리고 말았다.그를 기시회생시킨 건 과학원의 IBM 컴퓨터 500대 구매 결정이다.아버지 양복을 빌려 입고 IBM PC 수입 대리상 회의에서 참석했던 그가 20여년 뒤인 2005년 IBM PC사업을 인수한 기업인으로 우뚝 서기까진 곡절이 적지 않았다.
1990년 독자브랜드 PC를 내놓은 그는 버튼 하나로 인터넷을 할 수 있는 PC를 만들어 컴퓨터 조작을 잘 못하는 중국인들을 파고드는 등 중국 특색의 시장에서 점유율을 30% 가까이 끌어올리는 성공을 거뒀다.그러나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그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다.외국 회사들의 공세가 강화되면서 점유율이 하락하게 된 것.게다가 부동산 휴대폰 등으로 2000년 이후 본격화한 사업 다각화가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는 PC에 다시 집중하기로 하고 해외에서 돌파구를 찾았다.2005년 무려 17억5000만달러를 들여 IBM PC사업을 인수하면서 그가 얻은 건 세계 10위에서 3위 PC업체로 커진 덩치뿐만이 아니다."IBM은 토끼고,레노버는 그 토끼 등에 탄 거북이죠." 류 회장은 IBM을 통해 기술력,브랜드,국제화된 역량 있는 팀,국제적인 배급망을 얻게 됐다고 말한다.뉴욕으로 본사를 이전하고 최고경영자(CEO)에 IBM맨을 앉힌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류 회장은 이제 또 다른 도전에 나서고 있다.레노버그룹의 모기업인 레노버홀딩스가 소유한 투자기업을 통해 투자자로서의 삶을 시작했다.류 회장은 레노버홀딩스 산하의 훙이투자와 벤처캐피털인 롄샹투자를 2010년까지 중국의 3대 투자기업으로 키우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
류촨즈 레노버홀딩스 회장(64) 역시 전인대 대표로 참가하는 유명 기업인 중 한 명이다.중국 최대 컴퓨터업체 롄샹(영문명 lenovo)의 지주회사인 레노버홀딩스를 이끄는 그는 개혁.개방의 물결을 타고 글로벌 기업을 일군 대표적인 1세대 기업인으로 꼽힌다.그를 보면 30년의 개혁.개방을 통해 중국이 이룬 것과 향후 나아갈 방향을 읽을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예전 영문회사명 레전드(legend)는 그에게 딱 맞는 말이다.
중국 정보기술(IT) 역사의 '전설(legend)'로 통하는 그는 1968년 시안군사전신공정학원을 졸업한 뒤 청두의 연구소에 배치됐지만 수개월 뒤 문화혁명에 휩쓸려 허난성의 농장에서 일하게 된다.하지만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내건 이듬해인 1979년 중국과학원 컴퓨터기술연구소로 발령받으면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군사 예산을 삭감한 중국은 젊은 과학자들에게 알아서 살길을 찾으라고 권했고 그는 연구소 경비초소로 쓰였던 7평짜리 벽돌 건물에서 10명의 동료와 함께 창업했다.바로 그 즈임에 덩샤오핑은 '먼저 부자가 되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는 선부론(先富論)을 승인했다.
수입 PC는 물론 전자시계와 운동화 등을 닥치는 대로 사다 팔았지만 TV를 구매하려다 사기꾼에게 속아 창업자금의 3분의 2를 날리고 말았다.그를 기시회생시킨 건 과학원의 IBM 컴퓨터 500대 구매 결정이다.아버지 양복을 빌려 입고 IBM PC 수입 대리상 회의에서 참석했던 그가 20여년 뒤인 2005년 IBM PC사업을 인수한 기업인으로 우뚝 서기까진 곡절이 적지 않았다.
1990년 독자브랜드 PC를 내놓은 그는 버튼 하나로 인터넷을 할 수 있는 PC를 만들어 컴퓨터 조작을 잘 못하는 중국인들을 파고드는 등 중국 특색의 시장에서 점유율을 30% 가까이 끌어올리는 성공을 거뒀다.그러나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그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다.외국 회사들의 공세가 강화되면서 점유율이 하락하게 된 것.게다가 부동산 휴대폰 등으로 2000년 이후 본격화한 사업 다각화가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는 PC에 다시 집중하기로 하고 해외에서 돌파구를 찾았다.2005년 무려 17억5000만달러를 들여 IBM PC사업을 인수하면서 그가 얻은 건 세계 10위에서 3위 PC업체로 커진 덩치뿐만이 아니다."IBM은 토끼고,레노버는 그 토끼 등에 탄 거북이죠." 류 회장은 IBM을 통해 기술력,브랜드,국제화된 역량 있는 팀,국제적인 배급망을 얻게 됐다고 말한다.뉴욕으로 본사를 이전하고 최고경영자(CEO)에 IBM맨을 앉힌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류 회장은 이제 또 다른 도전에 나서고 있다.레노버그룹의 모기업인 레노버홀딩스가 소유한 투자기업을 통해 투자자로서의 삶을 시작했다.류 회장은 레노버홀딩스 산하의 훙이투자와 벤처캐피털인 롄샹투자를 2010년까지 중국의 3대 투자기업으로 키우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