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작가들의 그림값이 조정을 받고 있는 가운데 일본 현대미술이 한국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그동안 나라 요시모토,구사마 야요이 등 인기 작가들의 전시가 주류를 이뤘지만 올 들어 지명도가 떨어지는 회화·사진·조각 작가들의 작품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또 미국 중국 미술시장의 열기가 일본으로 옮겨 갈 것을 예상한 화랑들이 도쿄에 지점을 잇달아 개설하고 있으며 국내에서 전시회를 열고 있는 일본 작가도 20여명에 이른다.

이처럼 일본 현대미술이 발빠르게 세력을 불리고 있는 것은 한국이나 중국에 비해 그림값이 저렴하고 투자 위험도 덜한 데다 일본 그림 수집층이 넓어지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 같은 분위기에 편승해 구사마 야요이 등 일부 작가에 대한 '묻지마 투자'는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줄잇는 전시

파주 헤이리에서 일본 사진 작가들의 대규모 작품전이 열리고 있다.금산갤러리와 터치아트가 공동 개최한 이번 전시에는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오노데라 유키를 비롯해 도시오 시바타,아키 루미,후유키 하토리 등 7명의 작품 69점이 출품됐다.작품 가격은 점당 200만원부터 1000만원까지 다양하다.

PKM갤러리는 일본 조각가 스다 요시히로의 작품전을 열고 진달래,목련,나뭇잎 등 식물을 재현한 작품 10여점을 보여주고 있다.표화랑은 '몽환적인 시각기호'로 시각적 체험을 선사하는 사치요 쓰루미의 개인전을 열고 있다.또 선컨템포러리는 이바 야스코의 개인전,아트링크와 압구정 현대백화점 H갤러리는 구사마 야요이 개인전을 각각 마련했다.

◆일본 미술 전문화랑 등장

금산갤러리는 지난해 11월 국내 화랑으로는 처음으로 일본시장에 진출했다.도쿄 니혼바시에 150㎡(45평) 규모의 전시장을 마련한 금산은 조각가 아오키노에와 우에마스 게이지,회화작가 나카무라 가쓰미 등 일본 작가들을 한국에 소개하고 있다.

진화랑도 최근 일본 현대미술 전시·판매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지난해부터 도쿄 하라키와조 지역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하고 구사마 야요이,무라야마 다카노부 등의 초대전을 열었다.에이엠갤러리와 한국미술센터도 도쿄 신주쿠 거리에 지점을 개설할 방침이다.

◆갈수록 커지는 시장

일본 미술시장 규모는 2조원대로 추산된다.2001년 1조원대에서 두 배나 확대된 것.작년 미술품 경매 낙찰총액은 한국(약 2200억원)의 2~3배인 5000억~7000억원 수준.신아아트옥션과 이스트웨스트,마이니치 등 10여개 경매업체가 각축을 벌이고 있다.

현재 경매시장에서 인기 작가 온가와라,무라카미 다카시,나라 요시토모,구사마 야요이,스기모토 히로시 등의 작품은 100호(160.2×130.3㎝) 크기의 경우 점당 10억원대를 호가한다. 또 현대회화의 1세대로 꼽히는 가노 미츠오,도오모토 히사오,다까마쓰 지로를 비롯해 젊은 작가 히노 고레히꼬,아이다 마코토,고바야시 다까노부 등의 작품은 100호 크기가 점당 1억~3억원대에 거래된다.이밖에 조각·설치 작가 이사무 와카바이시,후나코시 카쓰라,아오키 노에,미사와 아쓰히코,마리코모리 등의 작품도 점당 1억~5억원대에 나온다.

금산갤러리의 황달성 대표는 "일본 그림은 강렬한 색감으로 전통적인 역사와 문화를 그려내면서도 한국과 중국에서 영향받은 특유의 화풍과 구상으로 묘한 분위기를 발산한다"며 "인기 배경은 가격 경쟁력"이라고 분석했다.그러나 이일영 한국미술센터 대표는 "올 들어 고유가와 인플레 우려로 일본 경제가 위축된 만큼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옥석을 가려내는 안목을 키우는 게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