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의 전설'도 공짜 앞에선 어쩔 수 없었던 것일까.'마젤란펀드 신화'로 유명한 피터 린치(64)가 뇌물 수수 사건에 연루되며 곤욕을 치렀다.

월스트리트저널은 6일 피터 린치 피델리티 매니지먼트 앤드 리서치(FMR) 부회장이 증권사들로부터 총 1만5948달러 상당의 공짜 공연 티켓을 뇌물로 받은 혐의가 적발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벌금을 내게 됐다고 보도했다.

SEC에 따르면 린치는 피델리티의 주식 트레이더 2명을 시켜 유명 록그룹 'U2'의 콘서트,라이더컵 골프대회 등 각종 공연 및 스포츠행사 티켓 61장을 총 12차례에 걸쳐 구해 오도록 지시했다.린치는 이와 관련해 SEC에 티켓 비용과 이자를 포함한 벌금 2만131달러를 내기로 합의했다.

린치는 성명서를 통해 "티켓을 부탁한 것은 결코 어떤 불순한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었다.내가 그런 행위를 한 것을 매우 후회한다"고 밝혔다.린치의 대변인인 더그 베일리는 "린치는 자신이 부탁한 티켓들이 피델리티와 거래 중인 증권사들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으며 단지 가족과 친구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썼을 뿐"이라며 "이번 일은 보르도산 고급 와인이나 호화 여행 등의 향응을 제공받는 여타 뇌물 사건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고 주장했다.

린치는 1969년 피델리티에 입사,1977년 당시 2000만달러의 소규모 펀드였던 마젤란펀드의 운용을 맡으면서 본격적인 펀드매니저 생활을 시작했다.고성장주와 저평가 우량주를 중심으로 한 장기적 가치투자를 철학으로 삼았던 린치는 이후 13년간 단 한 번도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한 적이 없었다.마젤란펀드 자산은 이 기간 660배나 불어나 132억달러로 성장했다.그에게 돈을 맡겼던 고객들은 투자자금의 28배,연평균 30%의 경이적인 고수익을 거뒀다.마젤란펀드가 보유한 종목은 1977년 40여개 안팎이었으나 1990년 1400개로 불어났다.한두 개 종목이 아니라 무려 1400개 종목을 보유하면서 이런 성적을 올린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정설이다.하지만 린치는 1990년 한창 일할 나이인 46세에 "이제는 가정에 충실하고 싶다"는 한마디 말을 남기고 돌연 월가에서 은퇴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린치는 펀드매니저를 그만둔 뒤 FMR의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개인자산 및 자신의 재단기금을 직접 운용하고 각종 강연 및 저작 활동을 해왔다.그가 자신의 주식투자 기법에 대해 쓴 저서 '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One up on Wall Street)'과 '피터 린치 주식투자(Beating the Street)'는 전 세계 투자자들의 필독서가 됐다.린치는 자신의 강연료와 책 인세를 모두 기부금으로 내놓고 있다.하지만 이번 뇌물 수수 사건으로 구설에 오르면서 명성에 흠집을 남기게 됐다.

SEC는 최근 4년 동안 펀드운용사의 주식 트레이더들이 매매 주문을 받으면서 증권사들로부터 뇌물을 챙기는 관행에 대해 집중 조사해왔다.현행 미국 증권관련법에선 주식 거래의 투명성과 신뢰 확보를 위해 펀드매니저들이 증권사들로부터 현금 또는 고가의 상품을 받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이 조사에서 피델리티는 린치 등 전·현직 임직원 9명이 총 150만달러의 뇌물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총 800만달러의 벌금을 내게 됐다.특히 피델리티는 지난해 펀드 유입자금이 총 750억달러로 경쟁사인 뱅가드그룹(1030억달러)과 아메리칸펀드(900억달러)에 크게 뒤처진 것으로 나타나 미국 최대 자산운용사로서의 자존심을 구겼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