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신용 경색이 다시 악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헤지펀드 등의 파산 여파로 유럽 은행 간 단기 금리인 유리보 등이 최근 급등하며 유럽 금융시장의 불안을 다시 점화시키고 있다고 5일 보도했다.지난해 대규모 유동성 공급으로 진화된 듯했던 유럽의 신용 경색이 재연 조짐을 보이자 추가 자금 지원이 이뤄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유럽 은행 간 기준 금리인 유리보 3개월물은 이날 연 4.401%로 지난 1월18일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유럽중앙은행(ECB)의 목표 금리 4%를 넘어선 수치다.유리보는 유로화를 단일 통화로 하는 유럽연합(EU) 12개 회원국들이 국제 금융거래 때 기준으로 삼는 금리다.런던은행 간 금리인 리보 3개월물도 2개월간 최고치인 5.774%로 올라 잉글랜드은행(BOE)의 정책금리 5.25%를 웃돌았다.시중에서 돈을 구하기가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유럽 중앙은행들은 지난해 8월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신용 경색이 발생하자 지속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해 왔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 4.95%로 7년 만의 최고 수준을 보였던 유리보(3개월물) 금리는 진정 국면으로 들어서는 듯했지만 최근 다시 오름세다.지난달 ECB가 3개월물 600억유로 규모의 자금을 재차 투입하기로 하는 등 시장 개입을 강화하고 있는데도 신용 경색의 불길은 쉽게 진화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미국의 서브프라임 위기가 여전한 데다 최근 헤지펀드인 포커스캐피털과 펠로톤파트너스ABS펀드 등이 파산한 것이 유동성 위기를 촉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지난 4일 뉴욕 소재 포커스캐피털은 포트폴리오 가치의 80% 손실을 입었고 은행으로부터 마진 콜을 받아 강제로 자산을 청산할 위기에 몰렸다고 밝혔다.포커스캐피털과 관련된 투자 손실로 영국의 헤지펀드 P솔브얼터너티브도 2억9700만달러를 대손 상각했다.투자은행 드레스너클레인워트의 윌렘 셀스 신용전략가는 "헤지펀드들의 잇단 몰락으로 은행들이 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회사들이 서브프라임 부실로 잇따라 손실을 입은 것도 금융 시장을 냉각시키고 있다.은행들이 재무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대출을 꺼리고 자금을 비축하고 있는 것.

해리스프라이빗뱅크의 잭 에이블린 수석 투자전략가는 "메릴린치나 씨티그룹 등 미국 금융회사들이 모두 1800억달러 이상의 부실 자산을 상각 처리한 상황에서 유동성 확보는 쉽지 않은 일"이라고 진단했다.

신용시장 경색이 다시 번질 조짐을 보이자 중앙은행들이 추가 대책 마련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WSJ는 영국 BOE가 추가 자금 지원에 나설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이날 ECB는 기준 금리를 현행 4.0%로 동결하기로 결정했다.인플레 억제를 위해 수년간 유지해 온 긴축기조를 이번에도 이어가기로 한 것이다.다만 장 클로드 트리셰 ECB 총재는 "국제금융 위기로 인한 불확실성이 이례적으로 높다"고 밝혀 경기 변동 여부에 따라 긴축기조를 완화할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