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재 < 시인 >

고구마 껍질 때문에 양식을 구하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엄동설한,한 가난한 가장이 식량이 떨어져 부잣집에 쌀을 빌리러 갔다.부잣집 주인은 하소연하는 사내에게 찐 고구마 몇 개를 내놓았다.그런데 사내는 고구마 껍질을 일일이 벗겨 고구마를 입에 넣는 것이었다.부잣집 주인은 사내를 빈손으로 돌려보냈다.예닐곱 살 때,아버지한테 들은 옛날이야기다.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준 까닭을 헤아리기란 어렵지 않다.먹을 것이 넉넉지 않던 시절,음식을 아껴 먹으라는 가르침을 전해주고 싶었던 것이다.어디 고구마뿐이랴.밀가루로 만든 음식을 먹고 나면 뛰어다니지 말아야 했다.뛰어놀면 '배가 얼른 꺼지기 때문에' 살살 걸어 다녀야 했다.

고구마를 껍질째 먹지 않았다가 낭패를 본 사람 이야기가 다시 떠오른 것은 얼마전 이메일 한 통을 받고 나서였다.한국작가회의(민족문학작가회의의 새 이름)에서 회원들에게 보낸 '직원채용공고'.작가회의 사무처에서 상근할 일꾼을 뽑는다는 것이었는데,응모 자격이 눈에 번쩍 뜨였다.일부를 그대로 옮긴다.

'며칠씩 밤새워 글을 써 본 적 있는 사람,3일 동안 밤새워 놀 수 있는 사람,노래 스무 곡 정도는 이어서 부를 수 있는 사람,시를 읽다 울어본 적 있는 사람,사랑으로 인한 상처가 오래가는 사람,궁금한 게 생기면 반드시 알아내야 잠을 자는 사람,음식값 술값을 먼저 내려고 하는 사람,친구 때문에 혼이 났어도 그 친구와 더 친해지는 사람,외국어 잘 못해도 배낭 들고 외국 나가는 일 주저하지 않는 사람,부탁을 받으면 잘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생각해보면,식량을 빌리지 못한 가난한 가장 이야기는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니다.부자의 입장에서는 사내의 현재(텅 빈 쌀독)가 아니라 미래(쌀을 갚을 능력)를 보고 싶었으리라.어떻게 갚겠느냐고 물어보면 들을 수 있는 말은 뻔할 터.그래서 음식 먹는 모습을 보자는 꾀를 낸 것인지도 모른다.하지만 부자의 판단이 옳지 않을 수도 있다.고구마 껍질을 벗겨 먹는 사람이 더 알뜰할 수 있다.음식 먹는 모습 하나로 사람을 판단한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없다.그리고 저 이야기에는 가난한 가장의 입장이 전혀 나타나 있지 않다.

사람을 제대로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첫눈에,한눈에 판단하기가 더더욱 어렵다.그러면서도 우리는 사람을 평가한다고 생각한다.서로 먼저 보고 먼저 판단하려 한다.볼 때마다 점수를 매기고,보일 때마다 좋은 인상을 주려고 갖은 노력을 다 한다.작가회의에서 보낸 메일을 몇 번이고 읽었다.처음에는 웃었다.그런데 웃을 일이 아니었다.우리 사회가 저런 사람들을 '사람'으로 인정한단 말인가? 작가회의의 모집 요건 가운데 대부분은 우리 사회에서 낙오자의 기준이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이나 '해리포터'와 같은 소설 한 편이 자동차 몇 만대 수출하는 것보다 많은 수익을 올린다는 문화산업론이 요란하다.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도 졸업장이나 토플 점수와 같은 '고구마 껍질'에 얽매여 있다.문화산업은 산업이기 이전에 사람이다.문화산업이 제 궤도에 진입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이끌어가는 것은 언제나 사람이다.문화산업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그런데 그런 사람은 고구마 먹는 모습 하나만 보고 상대방을 판단하는 부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작가회의가 뽑으려는 일꾼은 부자가 보기에 '수박을 껍질째 먹는' 터무니없는 사람이다.

나는 고구마를 껍질째 먹는 대기업 사원이나 공무원보다 작가회의 직원이 더 믿음직스럽다.수박을 껍질째 먹는 사람이 훨씬 더 창조적이고 열정적이며,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씨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사람 보는 눈이 경직돼 있는 사회,그런 사회가 미래가 없는 사회다.무서운 사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