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7일 전격 회동했다.한국은행 독립 문제로 사사건건 대립해왔던 두 사람은 해묵은 불신과 앙금을 모두 털어내려는 듯 이날 서울 은행회관 뱅커스클럽 오찬에서 배석자 없이 1시간40분 동안이나 밀담을 나눴다.

회동이 끝난 뒤 강 장관은 "상견례였을 뿐"이라며 "재미있는 얘기를 위주로 (대화를) 했다"고 말했다.이 총재도 '오해를 풀었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언제 오해한 적이 있느냐"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이날 만남을 '정부와 한은의 정책공조 신호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강 장관이 전광우 신임 금융위원장을 만나기에 앞서 이 총재를 만난 것이나,정책금리를 결정하는 금통위 회의가 끝난 뒤 한은 총재와 만난 것 등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정부가 충분히 존중하겠다는 메시지로 해석되기 때문이다.이 총재 역시 정부와 정책적 협조를 지속해 나간다는 데 공감하는 등 이날 만남은 밝은 분위기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재정부ㆍ한은 공조하나

강 장관과 이 총재는 오찬이 끝난 뒤 "세계경제와 금융시장의 상황 등 최근 우리 경제에 대해 논의했다"는 내용의 회동 결과문을 배포했다.자료에는 "정부는 한국은행이 통화신용정책을 중립적으로 수립해 나갈 수 있도록 자주성을 최대한 존중하고,한국은행은 통화신용정책이 정부의 경제정책과 조화를 이루도록 정책적 협조를 지속해나간다"는 내용도 담겨있었다.

강 장관과 이 총재는 "통화신용정책이 정부의 경제정책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등 거시정책 관련 기관들이 수시로 만나 경제상황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정보를 교환해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이로써 두 사람은 한국은행 독립성 문제에 대해 분명한 매듭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

한은 독립 문제가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도 형성됐다.1997년 외환위기가 밀려오던 무렵 재정경제원 차관이었던 강 장관과 한국은행 기획부장이었던 이 총재가 한은 독립 문제를 놓고 혈투를 벌였던 것에 대한 반성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강 장관은 "우리(강 장관과 이 총재)가 만나는 것 자체가 뉴스가 되고 있는데 우리가 만난다는 게 뉴스가 되지 않도록 하자.정부와 중앙은행이 협력해 경제가 잘 되도록 노력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당장 정책변화는 없을 듯

재정부와 한은은 이에 따라 국제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국내 금융시장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체제를 갖추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유가와 환율 등 외부변수들의 급격한 변동성 확대에 대비해 시장 상황을 면밀히 점검하고 거시경제정책과 환율ㆍ금리 정책이 충돌하지 않도록 조화로운 정책 조합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재정부는 무역수지가 최근 3개월 연속 적자로 돌아섰으나 원ㆍ달러 환율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는 만큼 외환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을 방침이다.

금리 정책도 석유와 각종 원자재 가격 급등의 여파로 물가가 빠르게 오르는 만큼 한은에 금리인하를 요구하지도 않을 것으로 보인다.재정부와 한은이 환율이나 금리 정책을 놓고 당장 충돌할 일은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세계경기 침체가 실물경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소비가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등 충격이 가시화될 경우에는 달라질 수 있다.경제 위기가 닥칠 경우 경기를 부양하려는 재정부와 통화가치를 지키려는 한은이 충돌할 수 있다는 얘기다.

현승윤/김인식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