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원.달러 환율 하락세(원화 강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 달리 원화가 약세를 보이면서 경제주체들이 당황하고 있다.

가장 고민이 많은 곳은 한국은행이다.고유가에다 원화 약세까지 겹치면서 물가 상승 압력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데도 미국의 금리 인하로 인해 정책금리를 올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후 지금처럼 한은이 진퇴양난에 처하기는 처음"이라며 "현 시점에서 원화 가치가 최소한 경쟁국 통화만큼 절상돼야 물가를 관리하는 데 숨통이 트일 수 있을 것"이라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기업들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수입 업체와 외화 조달 기업은 물론이고 일부 수출 업체마저 환율 반등이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다.조선업체를 비롯한 주요 수출업체들은 장기간 원화 강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올해 잡혀 있는 수출대금마저 선물환으로 이미 매도했기 때문이다.

이진우 농협선물 이코노미스트는 "요즘 기업의 외환담당자들은 환율이 예상밖으로 올라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느낌일 것"이라며 "지난해 10월 900원이 붕괴되자 집중적으로 선물환을 매도한 일부 조선업체의 경우 이미 달러당 60원 정도 손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투자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외국자금 이탈과 환율 상승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과정에서 주가가 크게 떨어져 엄청난 재산 손실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특히 한.미 간 금리가 역전된 점을 중시,외국자금 유입을 기대해 주식을 매입했던 투자자들의 고충이 심한 것으로 드러났다.정유신 굿모닝신한증권 부사장은 "미국과의 금리차가 크더라도 현재로서는 미국 금융회사들의 유동성 부족 문제가 마무리돼야 외국자금 유입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일반 국민도 피해가 적지 않다.원화 약세로 수입물가가 올라 소비자 물가가 크게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생활물가와 실업률을 더한 경제고통지수는 주로 생활물가 상승으로 지난해 9월 9.2에서 불과 석 달 만에 12.0으로 크게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해외에 유학생을 둔 부모와 해외여행객들의 부담도 많아졌다.미국에 두 명의 자녀를 유학시킨 한 시민은 "지난해 10월에 유학 경비를 달러로 바꿔 놓으려 했으나 '좀 더 지켜보자'는 은행원의 말만 믿고 그대로 놔뒀다가 지금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원화 약세(환율 상승) 추세는 당분간 쉽게 누그러지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미국 금융회사들의 자금 회수가 지속되고 있는 데다 국내 전망기관들은 올해 무역수지가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춘호 홍콩심플렉스 한국 대표는 "올해 100억달러 이상의 서비스 부문의 적자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무역수지적자가 국내전망기관들의 예상대로 50억달러이상으로 늘어날 경우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970원.원.엔환율은 100엔당 950원 이상으로 상승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