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양 < KAIST교수·정책학 >

동양사상의 가치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들라면 단연 중용(中庸)일 것이다.즉,본질을 직시하면서 지나치지도 않고 그렇다고 크게 모자라지도 않음이 길게 보면 가장 합리적이고 이롭다는 것이다.이윤이나 효용의 극대화 등 중용과는 거리가 먼 원칙이 강조되는 곳이 경제 분야이지만 지금 나타나고 있는 세계 경제의 어려움은 상당 부분 그동안 경제주체들의 행동과 정부의 경제 운용이 중용에서 크게 벗어난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미국과 일본 경제의 냉 각은 경제상황에 대한 경제주체들의 지나친 자만(自慢)과 방만(放漫),그리고 미봉적이고 본질을 빗겨난 정책대응이 초래한 각종 경제 거품(버블)에 기인한다는 공통점이 있다.1990년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도 부동산 거품의 결과였고,지금도 계속되는 경기 부진은 잃어버린 10년 동안 생산적인 투자를 유도하지 못한 정책 실패에 크게 기인한다.미국도 1990년대 말 시작된 닷컴 버블을 방만한 금리 인하로 대응하면서 결국 부동산 거품을 키웠고,그 여파가 세계 경제의 하강과 금융시장의 불안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 와중에 중국과 인도 경제가 새로운 세계경제의 엔진으로 등장한 것은 세계경제의 하강 국면에서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그러나 세계경제 엔진의 다극화가 마냥 반가울 수만은 없는 것은 이들 신흥 성장엔진들이 미국과 일본 등 종전의 것들과는 그 성격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즉,이들 엔진은 신기술 분야의 창출이나 생산성 향상을 기반으로 하기보다는 엄청난 원자재와 에너지를 삼키면서 성장하는 엔진인 것이다.따라서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이들 신흥 엔진의 경쟁적인 성장우선주의는 세계적인 자원(資源) 가격 상승과 이에 따른 물가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우려가 높다.

그러나 경기 침체와 물가 불안을 함께 다스릴 정책처방을 찾기는 쉽지 않다.따라서 이들의 본질적인 원인과 파급효과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함께 정책 우선순위를 명확히 설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미국의 경우에는 물가 불안보다는 고용 감소와 경기 침체를 더욱 우려하면서 큰 폭의 금리 인하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강하다.그러나 이는 잘못된 판단일 가능성이 크다.미국을 비롯한 세계경제의 하강은 기본적으로 1990년대 경제를 주도한 정보기술(IT) 분야를 이어갈 새로운 기술 분야가 본격적으로 부상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즉 자금보다는 투자 기회의 부족이 경기침체와 일자리 감소의 본질적인 원인이며,금리 인하나 통화 공급의 확대는 경기 하강의 본질을 빗겨나가면서 물가 불안만 가중시킬 소지가 높다.

이러한 미국 경제에 대한 상황진단은 우리에게도 별 차이 없이 적용된다.해외 원자재 의존도가 높고 투자 기회가 늘지 않는 상황에서는 금리 인하나 환율 인상 등 금융완화 정책으로는 경기 하강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고 도리어 물가 불안을 가중시킬 우려가 짙다.따라서 우선 금리 등 가능한 정책의 초점을 물가상승 요인의 완화와 그 확산의 차단에 맞춰야 한다.

이와 함께 물가상승 기대심리가 지나친 임금 상승과 제품가격 인상의 악순환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이를 위해 노사(勞使)의 대승적인 협력과 함께 탄력적인 세제(稅制) 운용과 공공요금의 안정 등 다각적이고 미시적인 정책 노력이 필요하다.당분간은 정부를 포함한 모든 경제주체가 성장 강박증이나 이기적인 제몫 찾기에서 벗어나 경제문제의 본질을 직시하면서 이에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게 대응하는 중용의 경제 자세를 견지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