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부민 공급이 제때 이뤄지지 않아 수술을 제외한 일반 치료에 큰 차질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서울대병원이 이 정도이니 일반 병ㆍ의원들이야 말할 것 있겠습니까." (임정미 서울대병원 약품담당 약사)

"지난 주말에 알부민 재고가 바닥났습니다. 알부민은 대체품도 없기 때문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황은주 부천 세종병원 약제팀장)

일부 병원들이 피 속에 단백질을 보충해 주는 알부민을 제때 확보하지 못해 수술까지 미루는 등 의료계에 '알부민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헌혈자 수 급감으로 알부민의 주재료인 '혈장' 공급량이 덩달아 줄어들면서 병원마다 알부민 재고량이 바닥나고 있기 때문이다.

간질환 환자나 장기이식 환자,교통사고 환자 등은 제때 알부민을 투여받지 못하면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

9일 보건복지가족부와 제약업계 등에 따르면 녹십자SK케미컬 등 국내 알부민 생산업체의 3월 중 예정 공급량은 5만9000병(알부민이 20% 함유된 100㎖ 들이 제품 기준)으로 월 평균 수요량 8만~9만병보다 30% 가까이 부족한 것으로 파악됐다.

4월 공급량은 3만4000병에 그칠 것으로 추정돼 알부민을 필요로 하는 환자의 절반 이상이 처방을 받지 못할 전망이다.

한 대학 병원 관계자는 "올 들어 알부민 공급부족이 심화되면서 생명이 위급한 환자에 한해서만 투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일부 지방 병원들은 알부민 확보에 실패해 수술을 미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같은 알부민 대란의 가장 큰 원인은 2004년 이후 계속된 '헌혈자 수 급감'이다. 헌혈로 인한 감염 사례가 나타나면서 헌혈 기피 현상이 확산된 데다 '헌혈실명제' 등 헌혈자에 대한 관리 강화까지 맞물리면서 2003년 253만명에 달했던 헌혈자 수는 지난해 202만명으로 4년 만에 50만명이나 줄었다.

이에 따라 2006년 46만ℓ에 달했던 국내 혈장 공급량도 지난해 33만8095ℓ로 30%가량 감소했다.

또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진국이 60일로 정한 혈장 보관기간을 지난해 보건당국이 100일로 늘린 것도 알부민 대란을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업계는 지난해 말부터 "알부민 대란을 막기 위해 한시적으로라도 60일로 완화해 달라"고 요청했지만,정부는 "국민 건강과 직결된 사안인 만큼 쉽게 결정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정부는 혈장에서 에이즈 등 각종 질병이 늦게 나타날 수 있다고 보고 혈장을 채취한 지 100일이 지난 뒤에 사용토록 하고 있다.

정부가 유럽 전역에서 확보된 혈장 수입을 막는 것도 알부민 대란을 촉발시킨 원인 중 하나라고 의료업계는 지적하고 있다.

광우병과 무관한 동유럽 국가에 대해서도 광우병이 발병한 영국이 속한 유럽연합(EU) 회원국이란 이유만으로 혈장 수입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성수 서울대 혈액내과 교수는 "이미 광우병이 발병한 미국의 혈장은 수입하면서 동유럽 혈장 수입을 막는 건 앞뒤가 맞지 않은 행정"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현재로선 일선 병원에 '꼭 필요한 환자에게만 알부민을 투여하라'는 지침을 내리고 있다"며 "혈장 보관기간 완화 및 수입선 다변화에 원칙적으로 공감하지만 규제완화는 시간을 두고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