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여름 기자가 일본 최대 노동조합 상급단체인 렌고(連合ㆍ노동조합총연합회)를 방문했을 때 일이다.'Cost Cutter(원가절감 달인)'로 불리는 카를로스 곤 닛산-르노 회장을 노동계에선 어떻게 평가하는지 물었다.1999년 프랑스의 르노가 닛산을 인수했을 때 곤이 사장을 맡자마자 일부공장을 폐쇄하는 등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했기 때문이다.당연히 부정적 평가가 나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현장을 중시하는 훌륭한 CEO"라며 카를로스 곤을 칭찬하는 게 아닌가.그는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씩 닛산 해외현지 법인을 둘러본다.
CEO들은 왜 현장을 중시할까.민간 기업의 경우 인사ㆍ경영권을 쥐고 있는 CEO가 현장근로자들과 접촉함으로써 직원들의 사기를 복돋워주고 근로의욕과 자부심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경영진 입장에서는 현장의 정보를 얻고 작업장의 문제점도 개선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기회가 주어진다.
이명박 정부도 현장주의를 들고 나왔다.서울시장 시절 시내 곳곳을 둘러보며 민생문제를 챙겨왔고 건설회사 CEO출신으로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그에게 현장은 생명이고 경쟁력이다.지난 주말에도 MB는 서울시내 대형 상점과 재래시장을 잇달아 방문해 현장 목소리를 듣고 시민들의 마음을 읽었다.대통령이 현장을 강조하자 장관들도 '현장 속으로' 뛰어들고 있다.강만수 기획재정,이윤호 지식경제,정운천 농수산식품,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 등이 앞다퉈 현장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장관들의 '행차'모습를 보고 있노라면 소리만 요란할 뿐 민폐를 끼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감이 앞선다.지난 주말 수십명의 기자를 동행한 강만수 장관은 아파트 건설현장을 방문해 "철근의 매점매석이 이뤄질 경우 끝까지 추적하라"는 지시를 내렸다.현장에서 생생하게 해법을 제시한 셈이다.하지만 현황 브리핑을 포함해 10여분 만에 뚝딱 해치운 행사가 어느 정도의 실효성이 있는지 궁금하다.장관에게 보고할 브리핑 자료를 준비했던 건설회사만 생산활동에 지장을 받은 건 아닌지….
전임 노무현 대통령이 현장방문을 극도로 자제한 것은 전시행정에 흐를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측면도 있다.국민과의 소통을 외면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지만…. 장관들의 방문은 민초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기회도 되지만 의욕이 앞설 경우 '쇼'에 그칠 수 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