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들이 판치는 주류업계에 첫 여성 마케팅 총괄 임원이 탄생했다.오비ㆍ카스 맥주를 생산하는 오비맥주가 최근 코카콜라음료(옛 코카콜라보틀링)에서 영입한 황인정 마케팅 총괄 상무(41)가 그 주인공.

"남편과 집에서 즐겨마시던 '카스' 브랜드 회사로부터 지난해 11월 영입 제안을 받고 두 달여간 다섯 차례 인터뷰 과정을 거치면서 서서히 운명으로 받아들여지더군요.'도전'이란 제 삶의 키워드와 카스의 지향점이 우연히 일치했기 때문이죠."

쟁쟁한 경쟁자를 제치고 오비맥주의 마케팅 사령탑이 된 황 상무는 "소비자들의 기호는 급변하고 최근엔 여성 음주 인구가 늘고 있어 여성 마케터가 특유의 섬세함을 살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여성 특유의 호기심과 관찰력을 활용해 주당들의 니즈를 개척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카스라는 성장 브랜드를 키우는 임무를 맡게 된 게 성취의욕을 자극한다고 강조했다."카스는 후레쉬,아이스라이트,레드 등 주류 업계에서 가장 많은 세 가지 패밀리 브랜드를 갖고 있어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어요.소비자들이 코카콜라를 찾듯이,맥주도 '카스주세요'로 만들고 싶습니다.오비맥주가 글로벌 브랜드로 나아가는 데도 기여해야 하는 책임감을 느낍니다."

황 상무는 "오비맥주의 기업 문화가 '선진형'으로 잘 뿌리내려져 있다"며 "직원들과 힘을 합쳐 '선진 마케팅'을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오비맥주에 와서 솔직히 문화적 충격도 받았어요.10여 명 임원들이 한 방에 모여 있는데 칸막이가 없고 책상이 서로 마주보도록 배치돼 있어요.그리고 직책 대신 이름을 부릅니다.'사장님'(이호림 대표) 대신 '네이슨'으로 부르고 저도 '이사벨'이라고 불립니다.서로간에 벽을 허물고 의사소통을 활발하게 하기 위해서죠.주류산업은 제품과 영업 마케팅,법률 문제 등이 한데 얽혀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연세대 영문과 출신인 그는 1990년 페덱스코리아에 입사한 뒤 1998년 한국코카콜라보틀링으로 옮겨 세일즈와 마케팅 부문 임원 등으로 근무했다.

"여성 임원은 '고스톱'쳐서 된 게 아니에요.부모님께서 (저에게) 미스코리아 같은 외모를 물려주시지 않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요.남성들과 동등하게,때로는 더 열심히 일했습니다.지난 18년간 생리휴가를 한 번도 가지 않았어요.남성들에 비해 우대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는 '일벌레'란 얘기를 듣지만 가정생활과의 균형에도 애쓴다.승진 코스였던 페덱스 홍콩지사 근무를 1년 만에 그만둔 것도 남편과 합치기 위해서였다.성공하는 여자는 일과 결혼한다는 것도 편견일 뿐이라고 말했다. "요즘엔 약간 예외지만 회사 일은 집으로 거의 가져가지 않습니다.주말에는 남편과 집안일을 합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