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발을 나갔다 돌아오던 경허 스님이 쌀이 가득 담긴 바랑을 멘 채 힘겹게 뒤따르던 제자 만공에게 말했다.

"바랑이 무거운가? 내 자네 바랑을 좀 가볍게 해주겠네." 마침 어느 마을을 지나던 경허는 우물가에서 물동이를 이고 나오던 아낙네의 두 귀를 잡고 입술을 맞췄다.

여인의 비명소리에 동네 사람들이 몽둥이를 들고 쫓아오자 두 스님은 온힘을 다해 도망쳤다.

한참을 달리던 경허가 만공에게 물었다.

"바랑은 잘 있는가?" 만공이 "아차,바랑!" 하고 찾아보니 바랑은 어깨에 둘러멘 그대로였다.

무거운 것은 과연 무엇인가.

바랑인가,마음인가.

이처럼 수행자에게는 일상의 모든 사물과 행동이 깨달음의 계기가 된다.

불교 수행자들이 지녔던 승물(僧物)과 고승들의 선서화(禪書畵) 및 도자예술 등을 통해 무소유와 소욕지족(小慾知足)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

오는 18일부터 다음 달 13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기획전 '세상을 담는 그릇-발우'다.

대한불교조계종 몽운사와 중앙신도회 등이 공동주최하는 이번 기획전에는 14개국 발우 100여점과 스님들이 지녔던 '승물 18물' 30여점,선서화 257점과 도자 115점 등이 전시된다.

이중 '승물 18물'은 스님들이 걸망 속에 갖고 다니거나 최소한의 소유가 허락된 물건들.승단이 소유를 허락한 세 종류의 옷(三衣)과 발우,양치용 나뭇가지인 양지,녹두나 팥 따위를 갈아 만든 가루비누 조두,석장(지팡이),물병,머리 깎을 때 쓰는 칼,불·보살상과 경전 등 다양한 물건들이 실물로 전시된다.

죽비,목탁,염주,금강저,부채 등도 소개한다.

특히 밥그릇인 발우는 무소유와 무욕의 상징이자 전법의 신표로 사용됐던 물건.구하·경봉·석주·도영·혜남 등 한국 고승들이 썼던 목발우·와발우·철발우·도자발우·방짜발우 등과 중국·몽골·대만·일본·티베트·미얀마 등의 다양한 발우가 전시된다.

달라이 라마가 썼던 철발우도 공개된다.

발우공양을 재현한 닥종이 및 도자기 인형 100여점도 관심을 끈다.

또 서옹·서암·혜암 등 역대 조계종 종정들과 원담·석주·경봉·혜인·고산·원응 스님 등이 깨달음의 세계를 표현한 선서화들은 보는 이를 심오한 선의 세계로 이끈다.

선화의 대가로 손꼽히는 수안 스님의 그림 120여점,설봉 스님의 도자에 수안 스님의 그림을 담은 도자기 100여점,도예 명장 천한봉씨와 무형문화재 김정옥씨의 사발과 다기세트 등도 전시된다.

세계고승대덕 승물전시위원회 (02)725-8657

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