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禪의 원류를 찾아… 저장省 아육왕사~천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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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선을 공부하는 목적은 오직 한 가지,행복하게 살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속의 행복과 조사선(祖師禪)의 행복에는 차이가 있어요.
세속의 행복은 나 바깥의 조건을 충족해서 그걸 이루는 데 비해 조사선의 행복은 그 조건을 버림으로써 날마다 향상되고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습니다.
외적 조건으로는 누구보다 많이 가졌던 부처님도 그걸 버리고 출가함으로써 참된 행복의 세계를 발견했거든요.
부처님이 발견하고 전해주신 행복의 법을 찾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입니다."
지난 10일 중국 저장성(浙江省) 닝보(寧波)에서 항저우(杭州)로 달리는 버스 안.중국 선불교 유적지 순례에 나선 조계종 원로 고우 스님(71·경북 봉화 금봉암 주지)의 '이동법당' 법문이 시작됐다.
꼭 1년 만이다.
지난해 3월 70여명의 순례단을 이끌고 중국 선불교의 유적지를 찾아나섰던 노장은 올해에도 108명의 순례단과 함께 선적지(禪蹟地) 순례를 이끌었다.
조계종중앙신도회 부설 불교인재개발원이 주관한 '대혜종고 선사와 고봉원묘 선사의 선적지 순례' 행사.오랜 도반인 상현 스님(천성산 조계암),무비 스님(통도사 강주),문경 대승사 선원장 철산 스님도 동행했다.
대혜종고(1089~1163년)는 화두 참구로 깨달음에 이르는 간화선(看話禪)을 정착시켰고,고봉원묘(1238~1295년)는 조사선의 핵심을 담은 '禪要(선요)'를 남긴 선종사의 주요 인물이다.
첫번째로 찾아간 곳은 중국 선종 5산의 하나로 손꼽히는 닝보의 아육왕사(阿育王寺).동진시대에 창건된 고찰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으로 유명하다.
은으로 만든 가로,세로 20㎝ 탑 안의 사리는 성냥알만한 크기.
하지만 순례단의 관심은 사리보다 대혜선사와 관련된 내용이다.
16세에 출가한 선사는 육조혜능-남악회양-임제의현으로 이어지는 임제종 정맥을 이은 원오극근(1063~1135년)에게 깨달음을 인가받고 법을 이었으며 승속(僧俗)을 가림없이 선을 전했다.
아육왕사는 대혜선사가 노년에 2년여 동안 머물렀던 곳이다.
그러나 절에는 선사의 흔적이 거의 없다.
역대 조사들의 얼굴과 행장을 소개한 석각판에 이름이 있을 뿐이다.
중국이 불교 진흥책을 쓰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 선에 대한 관심은 미미한 모양이다.
아육왕사에서 나와 닝보시 동쪽 25㎞ 지점에 있는 천동사(天童寺)로 간다.
서기 300년에 창건된 천동사에는 승방이 999칸이나 있었다고 한다.
현재 730개가 남아있다.
공양간 옆의 '千僧鍋(천승과)'라는 무쇠솥이 당시 규모를 짐작케 한다.
이는 1000명분의 밥을 짓던 솥으로 깊이 107㎝,직경 236㎝ 크기다.
이곳은 묵조선을 폈던 조동종의 본산이다.
묵조선은 면벽좌선하면서 자기 내면을 관조하는 것을 위주로 한 선법.당시 대혜종고와 함께 송대 선종을 대표하는 굉지정각(宏智正覺·1091~1157년) 선사가 이곳에서 법을 폈다.
일반적으로 간화선은 당시의 묵조선을 비판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고우 스님은 말했다.
그는 "대혜종고는 묵조선 그 자체를 비난한 것이 아니라 고요함과 물러남만을 강조하는 그릇된 선,즉 묵조의 죽은 선을 비판한 것"이라며 "굉지선사가 열반할 때 대혜선사에게 뒷일을 부탁할 정도로 두 분은 잘 지냈다"고 설명했다.
대혜의 선이 활달했던 데 비해 굉지의 선은 조용했으며 이는 가풍의 차이일 뿐이라는 것.결국 대혜선사는 본래성불의 바탕 위에서 이뤄지는 순간깨침과 화두 참구를 통한 깨침,회광반조(廻光反照) 등 다양한 선의 방법을 가르쳤다는 얘기다.
닝보=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그런데 세속의 행복과 조사선(祖師禪)의 행복에는 차이가 있어요.
세속의 행복은 나 바깥의 조건을 충족해서 그걸 이루는 데 비해 조사선의 행복은 그 조건을 버림으로써 날마다 향상되고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습니다.
외적 조건으로는 누구보다 많이 가졌던 부처님도 그걸 버리고 출가함으로써 참된 행복의 세계를 발견했거든요.
부처님이 발견하고 전해주신 행복의 법을 찾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입니다."
지난 10일 중국 저장성(浙江省) 닝보(寧波)에서 항저우(杭州)로 달리는 버스 안.중국 선불교 유적지 순례에 나선 조계종 원로 고우 스님(71·경북 봉화 금봉암 주지)의 '이동법당' 법문이 시작됐다.
꼭 1년 만이다.
지난해 3월 70여명의 순례단을 이끌고 중국 선불교의 유적지를 찾아나섰던 노장은 올해에도 108명의 순례단과 함께 선적지(禪蹟地) 순례를 이끌었다.
조계종중앙신도회 부설 불교인재개발원이 주관한 '대혜종고 선사와 고봉원묘 선사의 선적지 순례' 행사.오랜 도반인 상현 스님(천성산 조계암),무비 스님(통도사 강주),문경 대승사 선원장 철산 스님도 동행했다.
대혜종고(1089~1163년)는 화두 참구로 깨달음에 이르는 간화선(看話禪)을 정착시켰고,고봉원묘(1238~1295년)는 조사선의 핵심을 담은 '禪要(선요)'를 남긴 선종사의 주요 인물이다.
첫번째로 찾아간 곳은 중국 선종 5산의 하나로 손꼽히는 닝보의 아육왕사(阿育王寺).동진시대에 창건된 고찰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으로 유명하다.
은으로 만든 가로,세로 20㎝ 탑 안의 사리는 성냥알만한 크기.
하지만 순례단의 관심은 사리보다 대혜선사와 관련된 내용이다.
16세에 출가한 선사는 육조혜능-남악회양-임제의현으로 이어지는 임제종 정맥을 이은 원오극근(1063~1135년)에게 깨달음을 인가받고 법을 이었으며 승속(僧俗)을 가림없이 선을 전했다.
아육왕사는 대혜선사가 노년에 2년여 동안 머물렀던 곳이다.
그러나 절에는 선사의 흔적이 거의 없다.
역대 조사들의 얼굴과 행장을 소개한 석각판에 이름이 있을 뿐이다.
중국이 불교 진흥책을 쓰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 선에 대한 관심은 미미한 모양이다.
아육왕사에서 나와 닝보시 동쪽 25㎞ 지점에 있는 천동사(天童寺)로 간다.
서기 300년에 창건된 천동사에는 승방이 999칸이나 있었다고 한다.
현재 730개가 남아있다.
공양간 옆의 '千僧鍋(천승과)'라는 무쇠솥이 당시 규모를 짐작케 한다.
이는 1000명분의 밥을 짓던 솥으로 깊이 107㎝,직경 236㎝ 크기다.
이곳은 묵조선을 폈던 조동종의 본산이다.
묵조선은 면벽좌선하면서 자기 내면을 관조하는 것을 위주로 한 선법.당시 대혜종고와 함께 송대 선종을 대표하는 굉지정각(宏智正覺·1091~1157년) 선사가 이곳에서 법을 폈다.
일반적으로 간화선은 당시의 묵조선을 비판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고우 스님은 말했다.
그는 "대혜종고는 묵조선 그 자체를 비난한 것이 아니라 고요함과 물러남만을 강조하는 그릇된 선,즉 묵조의 죽은 선을 비판한 것"이라며 "굉지선사가 열반할 때 대혜선사에게 뒷일을 부탁할 정도로 두 분은 잘 지냈다"고 설명했다.
대혜의 선이 활달했던 데 비해 굉지의 선은 조용했으며 이는 가풍의 차이일 뿐이라는 것.결국 대혜선사는 본래성불의 바탕 위에서 이뤄지는 순간깨침과 화두 참구를 통한 깨침,회광반조(廻光反照) 등 다양한 선의 방법을 가르쳤다는 얘기다.
닝보=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