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의 런정페이 회장(64)이 사면초가에 몰렸다.

야심차게 추진해온 미 스리콤(3Com) 인수는 미국 정부의 보호주의 물결에 부닥쳐 난항을 겪고 있다.

최근 2년 새 6명의 직원들이 잇따라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해 기업문화도 도마 위에 올랐다.

'화웨이는 일하기 좋은 천당인가,생명을 앗아가는 지옥인가'라는 글이 중국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1988년 6명의 동업자와 함께 2만위안(약 260만원)을 갖고 통신장비 대리상으로 출발한 런 회장이 창업 이후 최대 위기에 몰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2005년)에 들어갔을 만큼 유명한 기업가인 그는 기술로 승부를 걸어 거대 기업을 일궜다는 평가를 받는다.

화웨이는 지난해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에 출원한 지식재산권이 1365건으로 세계 4위에 올랐으며 매출의 10% 이상을 R&D(연구개발)에 쏟아붓고 있다.

하지만 런 회장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일절 거절해 은둔의 기업인으로 불려왔다.

그런 그에게 위기가 닥친 건 현재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국회)에서 논쟁이 붙고 있는 노동계약법 때문이다.

화웨이는 지난해 7000여명의 직원에게 사직서를 제출하게 해 파문을 일으켰다.

새 노동계약법에 따라 1∼3년만 더 근무하면 정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직원들이 대상이었다.

인터넷상에선 "노동계약법 시행(2008년 1월)을 앞두고 기업이 사회적 책임과 도리를 저버렸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뒤이어 터진 직원들의 잇단 자살도 런 회장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지난 6일 선전 공장의 직원이 구내식당 3층에서 투신자살하는 등 최근 열흘 새 두 건의 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회사 측은 개인적인 이유라고 주장하지만 여론의 시선은 곱지 않다.

야근을 밥먹듯 하는 데다 근무시간에 외출하면 수시로 상황을 보고해야 하고,정보 보안을 위해 USB와 광디스크 사용이 금지돼 있으며,적지 않은 직원들이 언제 도태될지 모른다는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등 화웨이의 숨막히게 하는 기업문화가 문제라는 얘기가 쏟아진다.

런 회장의 세계 경영도 장애물을 만났다.

미국 재무부 산하 대외투자위원회가 중국 군사기술로의 전용을 우려하며 화웨이의 스리콤 인수에 제동을 걸고 있다.

화웨이의 지난해 매출은 160억달러로 이 가운데 해외 비중이 70%에 이른다.

런 회장은 잘나가던 2001년 '화웨이의 겨울'이라는 글을 발표,불황에 대비해 미리 사업 조정에 나서는 등 경영능력을 보여줬다.

그가 현실로 닥친 '겨울'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주목된다.

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