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남 SK텔레콤 부회장(68)이 14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 자리를 물러난다.

이달 중에는 은퇴식을 갖고 1966년부터 42년간 이어온 샐러리맨 생활에 마침표를 찍는다.

42년이면 원숙한 중년의 나이다.

구조조정이 일상화되면서 '사오정' '오륙도'를 걱정해야 하는 보통의 직장인들에게는 꿈 같은 기록이다.

말단 신입사원으로 출발해 굴지 대기업의 부회장 자리에까지 오른 그는 정유,석유화학,정보통신을 거치며 국가 기간산업을 일궈내는 데도 적지 않게 기여했다.

비결이 궁금할 수밖에 없지만 돌아온 대답은 간단하다.

조 부회장은 "살면서 의도적으로 한 게 있다면 어디서나 환영받는 사람,필요한 사람이 되라는 어머니 말씀을 따른 것뿐"이라고 말했다.

거창한 인터뷰는 싫다며 한사코 거절하는 그를 직접 만나 42년 샐러리맨 생활에 대한 회고담을 들었다.


―42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샐러리맨으로는 최고의 자리에까지 오르셨습니다.

비결이 뭡니까?


"운이 좋았던 덕분이죠.직장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직장생활도 오래한 게 아닌가 싶고.정유,석유화학,통신 등을 옮겨가며 살아온 것도 거의 운이지 무슨 영감으로 선택한 것은 아닙니다."(조 부회장은 1966년 10월10일 SK에너지의 전신인 대한석유공사에 입사해 직장에 첫발을 내디뎠으니까 주주총회 날까지 만 41년5개월 5일간 샐러리맨 생활을 한 것이라고 정확한 계산을 해줬다.)


―직장생활 노하우가 궁금한데요.

"제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다면 신뢰입니다.

서로를 믿지 않고 자꾸 의심하고 왜 저런 말을 할까 생각하기 시작하면 조직에 힘이 없어집니다.

그게 고 최종현 회장과 손길승 전 회장이 수립한 SK그룹의 경영철학이기도 하고요."


―신뢰와 관련된 일화도 많겠네요.

"우리 임원들이 40~50명일 즈음인데 당시 손길승 회장이 주재하는 미팅에서 한 임원이 크게 혼난 일이 있죠.사고가 나니까 손 회장이 화가 나서 '무슨 일을 그 따위로 하냐'며 기술부문장을 호되게 야단치셨습니다.

그때 제가 '회장님 그렇게 혼낼 일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니까 그 정도 수습했지,아니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칭찬할 일은 아니지만 너무 혼낼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끼어들었죠.회의실 분위기가 호수에 바람소리 나는 정도로 싸늘해졌죠.헌데 손 회장이 1~2초 만에 박장대소를 하면서 '야,너희 부회장 말 들으면 한 놈도 혼낼 놈이 없다'며 표정을 푸시더군요.

덕분에 분위기가 전환됐고 남은 회의를 즐겁게 마쳤습니다.

웬만한 직장에서는 그렇게 못했겠죠.신뢰가 없으면 회장 얘기에 끼어들기도 힘들고 그런 반전을 보기도 힘들었겠죠."


―직장생활이 항상 순탄하지많은 않았겠죠?

"대한석유공사에 다닐 때였죠.선경(현 SK)이 회사를 인수하더니 우리를 알아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힘들어서 더는 못다니겠다'고 하소연했더니 어디 가서 점을 봤다고 합디다.

점쟁이가 '걱정하지 말아라,이 사람은 70세까지 직장생활을 할 사람이다' 그러더라네요.

그땐 안믿었는데,이제 보니 용한 점쟁이었던 모양입니다."


―석유화학에서 통신으로 온 계기가 있었나요.

"뜻한 바 있어 옮겼던 건 아니고,타의에 의해 왔죠.SK가 이동통신 회사를 인수했는데 그룹으로서는 불행이고 저한테는 다행인 게 우리 회사에 통신기술자가 없다는 거였죠.그룹에서 새로운 일에 도전할 적임자를 찾다가 조정남이가 괜찮을 것 같다는 결론이 나왔다더군요.

잘 몰라도 아는 척은 잘 할 거라는 것이었죠."



―회사에서 주로 어떤 점을 인정받으셨나요.

"당시 손길승 부회장이 저를 SK텔레콤으로 보내면서 주의사항 두 가지를 제 등에 붙여서 보내시더군요.

하나는 이 사람은 머리가 좋아서 절대로 현장에 안가고 사무실 안에서 입으로 다하는 사람이다.

두 번째는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없다.

그 두 가지를 알고 써먹으라는 거죠.다행히 긍정적인 멘트도 있었죠.'이 친구가 일은 잘한다'는 거였습니다."


―기대에 부응하신 셈이군요.

"웬걸요,SK텔레콤으로 옮긴 이후 손 부회장이 거의 주 단위로 전화해 어디서 뭐하냐 묻더군요.

두 달은 참았는데 석 달째는 안되겠더라고요.

제가 '회사의 중대한 목표라든가,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이 있냐 없냐든가 뭐 이런 얘기를 해야지,어디서 뭐하는 걸 왜 챙깁니까.

앞으로 제가 전화하면 회사에 중대한 긴급상황이 일어난 것이고,전화가 없으면 평화롭게 잘가는 거라 생각하십시오'라고 말했죠.그러고 나니까 다시는 전화가 없더군요.

100% 저한테 맡긴 거죠.운 좋게도 이후 회사가 불같이 일어났습니다."


―회사를 떠나시면서 아쉬운 것은 없습니까.

"솔직히 얘기해서 제가 아이디어를 내서 이 회사를 획기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안 되겠다,나 좀 더 다녀야겠다'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할 일은 다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갈려야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죠.개인적으로는 직장생활 하면서 하고 싶어도 못해본 것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일을 하다 보니 보람도 느끼고 재미도 찾는 거지 어디 처음부터 일이 좋다고 하는 사람 있던가요.

저한테는 '쇼생크 탈출'이지요."


―그래도 미련이 남는 일이 있으실 텐데.

"회사 성장세가 둔화됐는데 임기 중 반전시키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습니다.

TU미디어가 고생하는 것도 그렇고요.

TU미디어도 비즈니스 모델 등을 전환하면 다시 회생할 길이 나올 것이라 봅니다.

최태원 회장님도 그간 해외 사업에 엄청 드라이브를 걸었고,이제는 내공을 쌓았다고 봐야죠.하나로텔레콤 인수는 시작일 뿐이고,조만간 뭐가 터져야죠."


―은퇴 후 정하신 일이 있습니까.

"본래 초등학교 때 희망은 국어선생님이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사범대학에 학사편입해서 국어 공부 더해 애들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돈은 더 벌지 않아도 충분하고,보람있는 일을 찾아서 해봐야죠."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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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1941년 전북 전주 출생 △1961년 전주고 졸업 △1966년 유공 입사 △1967년 서울대 화학공학과 졸업 △1978년 SK㈜ 기술부장 △1987년 SK㈜ 이사(엔지니어링 담당) △1992년 SK㈜ 상무(기술담당) △1995년 SK텔레콤 전무(서비스 생산 부문) △1998년 서울대 경영대학 최고경영자 과정 △1998년 SK텔레콤 부사장 △1998년 SK텔레콤 대표이사 사장 △2000년 SK텔레콤 대표이사 부회장(현) ○상훈=△2001년 4월 제46회 정보통신의 날 정보통신대상 수상 △2001년 11월 동탑산업훈장 수상 △2003년 7월 베트남정보통신발전공로 훈장 △2005년 12월 IMI 경영대상/사회공헌부문 △2006년 3월 2006 한국의 경영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