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중 바둑알의 정확한 색깔은?

①흑색 ②옥색 ③녹색

원래 정답은 ①번이었지만 이제부터는 ②,③번까지 복수 응답해야만 옳다.

컬러바둑알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제대로 홍보된 적이 없어 생소하지만 흑백의 통념을 깬 바둑알이 있다는 것 자체가 흥미롭다.

이 제품을 만든 곳은 신광바둑.웬만한 가정이나 회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바둑알의 십중팔구는 신광바둑 제품이다.

신광바둑은 지금도 하루에 4t 정도 분량의 바둑알을 찍어낸다.

바둑알 생산량으로 세계 최대 규모다.

올해로 76세를 맞는 허복래 신광바둑 회장은 해방 직후부터 60여 년간 바둑알만 만들어왔다.

지금은 허 회장의 뒤를 이어 셋째 아들인 허윤구 대표가 가업을 잇고 있다.


강원도 횡성 출신의 허 회장은 어렸을 때 부친을 따라 대전으로 이사를 왔다.

1946년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자 허 회장은 국민학교(초등학교)를 갓 마친 열네살의 어린 나이에 단추공장 '대전초자'에 들어간다.

대전초자는 원래 일본 사람이 운영하던 공장으로 유리 등의 재료를 이용해 단추를 만들었다.

어린 나이에도 성실하고 요령을 피우지 않았던 그는 공장에 들어간 지 4년 만에 공장장이 됐다.

그는 사소한 하자라도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는 고집불통이었다.

만약 제품이 맘에 들지 않으면 인부들을 동원해 밤을 세워서라도 다시 제작하게 했다.그때부터 대전초자는 일대에서 가장 품질 좋은 단추를 생산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당시엔 일본제품밖에 없었죠"

그 무렵 고 조남철 국수가 공장에 찾아왔다.

수소문 끝에 단추공장이 몰려 있던 대전까지 내려왔다가 대전초자로 오게 된 것.그리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생산하지 않았던 바둑알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허 회장의 운명이 '단수(單手)처럼' 결정된 것도 이때부터다.

"그땐 전부 일본 제품을 수입해서 썼습니다.

우리 공장에서 만들어주겠다고는 했는데,바둑알을 만들어 봤어야죠? 결국 내가 한 알 한 알,죄다 손으로 만들었어요.
[代를 잇는 家嶪] (4) 신광바둑 ‥ "故조남철 국수가 첫 영업사원"
우리가 물건을 만들어주면 조 국수가 서울로 가지고 올라가 파는 식이었죠.일생을 현대바둑 보급에 바친 조 국수가 우리나라의 바둑알 보급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허허."

조 국수는 솜씨 좋은 허 회장을 '바둑 도사'라고 불렀다.

그 무렵 플라스틱이 공급되면서 유리 단추의 수요도 급격히 떨어졌다.

허 회장은 바둑알 제조기술을 밑천으로 열아홉살에 독립,'신광초자'를 설립했다.

바둑 인구도 늘어나기 시작할 때라 제법 주문이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수제품으로는 수요를 맞추기 어려웠다.

허 회장은 1977년 서울 공대를 졸업한 지인의 도움으로 밤샘 연구 끝에 1981년 바둑알 자동화 기계를 개발,특허를 냈다.

이때부터 비로소 국내 바둑알의 대량 공급이 가능해졌다.

조훈현 9단,서봉수 9단 등 대중적인 인기를 모았던 프로기사들의 활동이 늘어나면서 신광초자도 호황을 누렸다.

매달 5t 트럭 10대분의 바둑알이 팔려나갔을 정도다.

[代를 잇는 家嶪] (4) 신광바둑 ‥ "故조남철 국수가 첫 영업사원"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바둑알 시장은 또 한 차례 호황을 맞는다.

퇴직자들이 기원에 몰리면서 바둑알이 품귀현상을 빚은 것.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자 허 회장은 중국 지난시에 공장을 세웠다.

초기에는 인건비가 반값이어서 남는 장사였지만 곧 환율이 급격히 오르면서 수익을 내기가 어려웠다.

중국 진출 3년 만에 국내로 철수한 허 회장은 벙커C유를 때워 연기가 많이 나던 기존 제작 방식을 버리고 바둑알 생산에 적합한 전기로(電氣爐) 방식을 직접 고안해 냈다.

자동화 기계에 이어 전기로 방식도 신광에서 처음으로 도입한 것이다.

◆태국 등 한류바람 타고 수출 '날개'

최근 들어서는 인터넷 바둑이 보급되면서 바둑알을 찾는 사람이 줄어든 상태다.

대신 해외 수출이 버팀목이 되고 있다.

"태국에서는 '한류 바둑' 바람이 한창입니다.

일부 대기업에서는 '아마 1단' 정도의 수준을 갖춘 신입사원을 특채할 정도로 인기죠.현지 바둑 인구만 10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허윤구 대표)

신광바둑은 중국,일본 외에도 태국,인도네시아,이스라엘,네덜란드 등을 비롯해 러시아,폴란드,헝가리,체코 등 동구권 국가에도 바둑알을 공급하고 있다.

국내 유일의 바둑알 수출기업이다.

아직은 연간 수출액이 20만달러 수준에 불과하지만 2~3년 내에 50만달러 수출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허 대표는 "세계아마바둑선수권대회에 참가하는 나라만 해도 60~70개국에 달한다"며 "2010년 중국 아시안게임에 바둑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돼 수출도 급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창업주 허 회장이 국내 바둑알 보급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면 2대 경영을 맡고 있는 허윤구 대표는 바둑알의 품질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재작년부터 시판하기 시작한 '컬러 바둑알'이다.

옥색,녹색의 컬러 바둑알은 눈의 피로를 덜어줄 뿐만 아니라 2인1조로 복식 바둑을 두기에도 제격이다.

신광바둑이 야심차게 개발한 두 번째 제품은 황토,백토 등을 섞어 만든'음이온.원적외선' 바둑알.이 제품은 최근 공산품의 품질검사 기관인 FITI시험연구원과 한국원적외선협회의 실험 결과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결과를 얻어냈다.

바둑알 가격은 재질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보통의 흑백 바둑알은 3000원부터 1만4000원이면 구입할 수 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가격은 별 차이가 없다고.컬러바둑알은 이보다 비싼 2만5000~6만9000원에 판매된다.

최고가 제품은 '음이온.원적외선 바둑알'로 흑백 한 세트에 12만원이다.

그런데 '바둑 도사'들의 바둑실력은 정작 어떨까? "아마 1~2급 정도나 될까요? 언젠가 조 국수가 아마 3~4단짜리 문하생들한테 '바둑도사'가 왔다고 소개하는 바람에 혼이 났습니다.

한 수 가르쳐 달라고 덤벼드는 통에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뿌리치느라 진땀을 뺐지요.

아들은 나보다도 한 수 아랩니다.허허."

(허 회장)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